새해를 사흘 앞둔 29일 오전. 갑자기 밀어닥친 한파에 한껏 몸을 움츠린 채 발을 동동거리는 행인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던 아이들을 만났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내 어린이병원 환자들은 소아암 등 무서운 병마와 싸우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새해의 희망을 꿈꾸고 있었다.
신장이 나빠 지난해 7월부터 병원 생활을 시작한 황효은(6)양. 효은이는 같은 병동의 친구들보다 병세가 조금 깊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어린 나이지만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만성신부전증에 노인성 백내장, 고혈압, 골다공증 등 14개나 되는 합병증을 앓고 있다. 깊은 병세에 힘들어 할 만도 하지만 효은이는 씩씩하게 새해 소망을 말했다. “빨리 나아서 어린이집 친구들이랑 종이접기도 하고 인형놀이도 하고 싶어요. 내년에는 병원에 같이 있는 언니 오빠 동생들이랑 놀이공원에 놀러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헌혈실에서 만난 이현준(4)군은 신경을 타고 암이 퍼지는 신경모세포종을 앓는 소아암 환자다. 이날 오전9시30분부터 오후3시까지 6시간 동안 조혈모세포 수혈을 받고 있었다. 안타까운 얼굴로 어린 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 이미숙(29)씨는 “병원 치료와 수술을 잘 참아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밖에 아무 것도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겨울을 맞아 폐렴을 심하게 앓는 어린이들도 많았다. ‘7층 대장’으로 통하는 개구쟁이 채시훈(4)군의 마음은 벌써 병원을 나서 동네 친구들에게 가 있었다. “미끄럼도 잘 못 탄다고 놀리던 친구들한테 시훈이는 어른들도 하기 힘든 수술을 다 참아냈다고 자랑할 거예요.”
벌써 입원 8개월 째인 정수현(10ㆍ제주 도남초 4년)양은 “어디 갈 때마다 (링거를 거는) 끌대를 끌고 다녀야 해 너무 지겹다”며 손사래를 쳤다. 수현이는“퇴원보다도 새해에는 주사를 그만 맞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맑은 얼굴의 자식들을 뒤로 하고 돌아선 부모들의 이마엔 주름이 하나씩 늘고 있는 듯 했다. 희귀병에는 인색한 건강보험이 가장 큰 이유다. 효은이의 엄마 어머니 김영애(37)씨는 “항생제 접종비로만 일주일에 140만원이 들어 한달 병원비가 800만원에 이른다”며 “새해에는 보다 많은 약들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더 없는 힘이 되겠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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