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기간 단축안은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선심성 단골메뉴였다. 내년 대통령 선거가 아직 1년이나 남아 있는데 벌써 대통령이 직접 군 복무기간 6개월 단축안을 내놓았고, 국방부가 모병제의 변형인 유급지원병제 안을 띄우는 것을 보니 걱정이 앞선다.
벌써 징집대상자들이 입영기일을 연기하려는 등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 이 문제를 국가적 견지에서 냉철히 따져봐야 하겠다.
정책의 내용적 면에서 보면 아직은 24개월 이상 복무하는 군대가 더 많기는 하지만 냉전 종식 이후 세계적 추세로 볼 때 평화시의 군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는 것이 전혀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과거 20여년 동안 군 복무기간 단축 가능성과 필요성을 제기해온 사람이다. 군에서 장기간 '썩는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군 복무 면제자를 최소화시키고, 후기산업시대 이후 결핍되어가는 청년들의 나라사랑과 공동체 생활체험을 증진시키는 실질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징병대상자의 자질은 많이 향상되었다. 4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전방부대에는 중학교를 졸업한 병사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이 대학 재학 중에 입대한다.
이는 곧 반복교육과 훈련에 의한 숙달기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고 전문 장비영역에서의 기술적 적응능력을 비교적 단시간 내에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병영환경도 크게 좋아졌다.
과거에는 병영생활의 상당부분이 교육이나 훈련보다 작업이나 난방자료 모으기 등에 이용되었으나 이제 천재지변시의 대민봉사작업 외에는 실질적 훈련시간을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보면 복무기간 단축이 병사들의 전투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이제 기우일 수도 있다. 또한 전면전쟁이 발발하면 현역 외에 동원예비군이 전장에 투입되어야 하니 현역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안보상황과 여건으로 볼 때 당분간 복무기간 단축, 특히 급작스러운 6개월 단축은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기습 남침용 화력과 기동력을 계속 증강하고 있으며,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김정일 정권이 있는 한, 현역병 복무기간 단축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건상으로도 '국방개혁 2020'이나 '국방개혁기본법'에 군의 전력개선계획이 본 궤도에 들어서서 전투력의 질적 증강이 양적 수준을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된 이후라야 복무기간 단축이 가능할 것이다.
국방비 소요 차원에서도 무기 선진화와 유급지원병제의 병행실시에는 큰 부담이 따를 것이다. 더욱이 군 복무기간 단축이 정치적 선심의 도구가 됨으로써 이 나라 청년들의 헌신적인 헌법적 국가수호 의무를 폄훼시키지나 않을까 크게 우려된다.
바라건대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등 남침 전력과 침공 의도를 포기하고 남북관계가 평화공존으로 정착된 후, 한미동맹관계가 새롭게 회복된 후, 그리고 제반 국방전력증강계획이 실현되어 한국군의 질적 수준이 믿음직하게 된 후가 되면 군 복무기간의 점진적 단축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정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려면 해당 정부부서와 전문가의 심층 연구와 논의를 거쳐 국민의 공감대 위에서 제안되고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국가안보문제와 군 복무기간 단축 문제가 정치적 선심공약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류재갑 경기대 교수ㆍ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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