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 한겨울, 내설악 백담사로 가는 길은 구도의 길이다. 순백의 백담계곡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신비스러운 선경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꿈속을 거닐 듯 2시간 가량 올라서 도착한 백담사. 기와마다 소담스런 흰눈을 이고 선 절은 적막했다. 봄, 여름, 가을엔 산행객과 신도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백담사는 눈 쌓이는 겨울이면 오래 전(전두환 전 대통령이 찾기 이전) 조용하고 아늑했던 사찰로 되돌아간다. 용대리 주차장에서 백담사까지 6.5km 되는 길을 오가던 셔틀버스가 운행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경내를 한바퀴 둘러본 후 종무소에 들러 하룻밤 묵을 수 있겠느냐 청을 하니 고운 미소의 법당 보살님이 방을 하나 내주신다. 방바닥은 뜨끈뜨끈했지만 창호지 바른 방문, 창문 탓에 웃풍이 세다. 아파트에 익숙해진 몸이 옛 구들의 기억을 더듬으며 반가워한다. 바닥에 누우면 등은 따뜻한데 코는 얼얼한 그 기분.
깊은 산속이라 해가 빨리 떨어진다. 산그림자로 어둑해진 오후 5시. 목탁소리가 번졌다. 저녁 공양시간이다. 된장국에 김치, 나물, 오이지 등 소박한 찬이다. 같은 밥이라도 공양이라고 하니 그 느낌이 달라 한 수저 한 수저가 조심스럽다.
식판을 깨끗이 씻어 제자리에 놓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곧 이어 종소리 퍼지며 저녁 예불이 시작됐다. 극락보전에서 들리는 목탁소리, 선원에서 들리는 독경소리. 처마에선 녹은 눈의 낙수 소리가 ‘똑, 똑, 똑’,
따듯한 구들에 누워 산사의 소리를 마냥 감상하다 깜박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캄캄한 어둠 속 시계를 보니 이제 저녁8시40분. 산사의 시간은 깊이도 간다.
방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나섰다. 법당에 밝힌 불빛이 창호지 문을 투과해 은은히 마당을 밝히고, 간간히 설치된 가로등 불빛이 경내 처마의 윤곽만을 드러내고 있다. 음력 초승이라 달은 그림자도 안보인다. 대신 비로드 천 같은 윤기나는 밤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충만했다. 어느 책에선가 히말라야의 별은 귀로 듣는다고 했다. 백담사의 겨울 별 또한 귀로 들을만 했다.
다시 방에 들어가 주체할 수 없는 고요와 조우했다. 건넌방에 깃든 보살의 쿨럭이는 기침소리만이 간간이 정적을 깨울 뿐이다. 무거운 침묵의 시간은 길었고, 생각도 따라서 깊어진다. 무엇 하려고 이 깊은 밤을 찾아 나선걸까. 나는 무엇이고, 지금 이 시간은 또한 무슨 의미인다.
오전 6시 아침공양을 한 후 날 밝기를 기다렸다가 서둘러 짐을 챙겨 일어섰다. 이날은 동지라 모처럼 눈밭을 헤쳐가며 신도들이 몰려들 것이다. 한가로웠던 백담사의 기억에 흠집 생길라 부산해지기 전에 길을 나섰다.
산길을 따라 오세암으로 향해봤다. 매표소에서 눈 때문에 길이 통제됐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혹시나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백담산장 앞에 닫힌 철문이 길을 가로막는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야 어렵지 않겠지만, 비우러 떠난 세밑의 여행길. 이 또한 욕심이란 생각에 등을 돌렸다.
백담계곡을 따라 털털 내려오는데 절에서 나온 차량이 태워주겠다고 멈춰선다. 하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절 마당 한 쪽에 세워진 고은의 시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일주문을 지날 즈음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펑펑 쏟아진다. 백담사의 겨울 추억마저 다 잊어버리라고, 비운 것 조차 다 지우라고 흰 눈이 소복소복 머리를 덮고, 등 뒤의 발자국을 덮는다.
백담사(인제)=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백담사는 피안의 절
백담사는 피안(彼岸)의 절이다. 백담사로 오르는 백담계곡은 피안의 세상을 여는 아늑한 통로다.
백담사는 또한 만해(卍海)의 절이다. 만해 한용운과 백담사는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다. 20세 때 처음 백담사를 찾은 만해는 25세때 다시 백담사에 들어와 이듬해 이곳에서 출가했다. 3ㆍ1운동 후 옥고를 치른 만해는 다시 백담사 품에 들어와 시집 <님의 침묵> 등을 탈고했다. 만해가 있었던 백담사의 분위기는 눈 내리는 겨울이라야 제격이다. 지금의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이 당시 만해를 매료시켰을 것이다. 님의>
백담사의 백담은 흰 물웅덩이가 아니라 일백 백의 물웅덩이를 말한다. 대청봉에서 절이 있는 곳 까지의 물이 잠시 머무는 담(潭)의 수를 세어보니 100개가 된다고 해 붙여졌다고 한다.
신라 진덕여왕 1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천년 고찰 백담사. 처음에는 한계사라 하였던 것을 십여 차례 소실되고 다시 지어지며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축사 등의 여러 이름을 거쳤고, 조선 정조때 백담사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백담사 경내 한쪽에 마련된 만해기념관에서는 만해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 등의 저서와 <님의 침묵> 초간본 등 100여종의 판본이 전시돼 있다. 님의> 불교대전>
극락보전 바로 앞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던 작은 방이 있다. 천하가 제 것이라 마구 호령하다 산골 작은 절로 쫓겨온 그는 과연 이 작은 방에서 ‘참회’를 배웠을까?
백담사는 선원으로도 유명하다. 백담사 위로 출입통제 표지를 지나 150m 가량 오솔길을 올라가면 무금선원(無今禪院)의 무문관(無門關)이다. 화장실이 딸려있는 2평 크기의 방 12칸의 문은 모두 바깥에서 잠겨있다. 독방에 들어가 3개월이면 3개월, 3년이면 3년 시간을 정해놓고 밖으로 나오지 않은채 방안에서만 ‘폐문정진’하는 곳이다. 하루에 단 한번 오전 11시 작은 공양구를 통해 식사만 전해질 뿐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다. 고독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하는 폐문정진은 눕지않고 참선하는 ‘장좌불와’와 잠자지 않고 수행하는 ‘용맹정진’과 함께 가장 어려운 수행법의 하나로 손꼽힌다. 지금은 12분의 스님이 폐문정진중이다.
무문관의 반대쪽 백담사 만해당 뒤편에는 조계종의 기본선원이 있다. 젊은 스님들이 본격적인 선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공부를 하는, 일종의 ‘불교사관학교’다. 현재 40여 명의 스님들이 엄격한 규율 아래 교육을 받고 있다.
백담사는 내설악으로 오르는 길잡이다. 백담사를 거쳐 계곡을 계속 오르면 영시암이 나오고 마등령쪽으로 오르면 오세암, 수렴동대피소를 지나 구곡담으로 해서 오르면 봉정암이다. 봉정암은 해발 1,244m로 높기도 하거니와 가는 길이 험해 눈 쌓이는 겨울철엔 일반인들의 출입이 수시로 통제된다. 이곳에 있는 5층 석탑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뇌보탑이다. 탑 아래로 펼쳐진 장엄한 설악능선이 장관이다.
백담사에서 하루 묵으려 한다면 사찰 종무소(033-462-6969)에 미리 예약해야 한다. 아침, 저녁 공양과 1박에 1인당 1만5,000원. 국립공원관리공단 백담분소 (0330462-2554
백담사(인제)=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약수의 고장 '인제'
백담이 깃든 설악과 점봉산, 방태산 등 강원 인제의 명산 자락은 명약수를 품고있다. 깊은 계곡, 약수터에서 한 모금의 약수는 몸에 새 기운을 불어넣는 활력소다. 좋다는 약수에선 톡쏘는 피맛이 난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물에 녹아있는 미네랄과 철분 등에서 나는 피비린내 때문에 피한다. 하지만 바로 그 맛 때문에 먹어야 하는 게 약수다. 첩첩산중이 고아낸 약수는 산을 청청하게 하는 산의 혈액. 그 물 한 모금을 몸 속에 적시는 것은 산의 정기를 그대로 마시는 일이다. 백담사 인근 인제군의 유명 약수들을 안내한다.
방동약수
방태산자락, 방태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조경동 방향으로 조금 오르다 만나는 약수다. 주차장에서 약수터까지는 20여m. 좁은 계곡을 넘어갈 수 있는 나무다리 위에도, 약수터 옆의 정자에도 눈이 쌓여 겨울의 운치를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약수터다.
약 300년 전 한 심마니가 ‘육구만달’을 캤다고 한다. 육구만달은 60년이 넘은 씨가 달린 산삼을 말하는 것으로, 이 산삼을 캐낸 자리에서 치솟은 물이 방동약수라 한다. 약수 옆에는 나무뚜껑이 약수를 덮는 나무뚜껑이 놓여져 있다. 물은 철분 함량이 많고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개인약수
인제군 상남면의 개인산은 해발 1,327~1,444m의 다섯 봉우리(깃대봉, 주억봉, 구룡덕봉, 개인산, 숫돌봉)를 거느린 소쿠리 모양의 아늑한 산이다. 이 곳 골짜기를 휘돌아 내리는 물줄기가 내린천 원류가 되는 미산계곡이다. 이곳에 숨겨진 약수가 개인약수다. 개인약수는 해발 1,080m의 높은 곳에 있고, 약수터까지 한참을 걸어 올라야 하는 수고 때문에 지금껏 최고의 청정함을 간직하고 있다. 19세기 말에 발견됐다는 이 약수는 주변에는 100년 넘은 잣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 소나무 등 노목들이 우거져 있다. 위장병 당뇨병 등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진다.
남전약수
남전약수는 다른 약수터에 비해 찾아가기가 편하다. 인제-양평을 잇는 44번 국도 대로변에 있다. 예부터 이곳은 쪽풀이 많아 쪽밭골이라 불리었고, 약수도 쪽밭골약수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인제 방향으로 홍천을 벗어나 신남을 지나 얼마 안가 오른쪽에 있다.
강원도의 다른 약수들
오대산 자락 방아다리 약수는 조선 숙종때 발견된 유서깊은 약수다. 주변에 전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어 산림욕을 곁들일 수 있다. 특히 입구에서 약수터로 가는 약 1km의 전나무 숲길은 천국의 길. 약수를 마시기도 전에 속을 시원하게 한다. 주변 월정사 상원사 등 오대산의 넉넉한 품을 감상할 수 있다.
홍천-양양을 잇는 구룡령을 넘다 만나는 미천골휴양림. 이곳에도 불바라기 약수라는 명약수가 숨어있다. 휴양림 입구에서 약수까지는 12km. 차를 타고 7km 가량은 오를 수 있지만 나머지는 산길을 걸어야 한다. 수려한 풍경의 계곡과 함께 걷기 때문에 지루하진 않다. 계곡의 바위 위로 폭포 2개가 쏟아지는데 왼쪽 폭포 중간지점 빨갛게 색이 든 곳이 불바라기 약수다. 땅에서 솟는 약수가 아니라 절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약수다. 철이 많아 대장간이 번성한 곳이었다고 이름 붙여졌다고 하지만 바위를 벌겋게 물들인 모습이 마치 해바라기를 닮았다.
정선 화암팔경중 제1경이 화암약수다. 주변을 그림 같은 바위와 숲이 감싸고 있어 풍경으로 치자면 전국 제1의 약수터다. 청룡과 황룡이 승천했던 자리를 파보니 샘물이 올라왔다고 전해진다.
인제=글ㆍ사진 이성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