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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산 그리고 사람] <43ㆍ최종회> 마티아스 추르브리겐(1856~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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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산 그리고 사람] <43ㆍ최종회> 마티아스 추르브리겐(1856~1917)

입력
2006.12.29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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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아스 추르브리겐은 세계등반사의 격변기에 과감하게 자신의 존재를 전면에 드러낸 가이드 출신의 산악인이다. 그의 본래 활동지역은 이탈리아의 몬테 로사(4,634m)였다. 그는 이 산의 동면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어 '몬테 로사 동면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알프스 등반의 황금시대가 막을 내리자 그는 세계 전역으로 눈을 돌렸고 가이드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며 놀라운 등반활동을 펼쳤다.

1892년 그는 영국의 마틴 콘웨이와 함께 카라코람의 파이오니어 피크(6,790m)에 도전했다가 저 혼자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까지 인류가 도달한 최고의 높이였다. 1894년에는 피츠제랄드와 함께 뉴질랜드 원정을 떠나 그곳의 정상인 마운트쿡(3,764m)에 올랐다. 이 역시 '의뢰인'과는 무관한 단독등정이었다. 1898년에는 남미 안데스의 아콩카과(6,960m)에 올랐다. 이 역시 '의뢰인'과는 무관한 단독등정이었으며 세계초등기록이다.

마티아스 추르브리겐은 '자선전을 남긴 최초의 가이드'로 기록된다. 이를테면 '가이드의 독립선언문'을 만천하에 공표한 셈이다. "나는 누구의 하인이나 그림자가 아니라 독자적인 산악인이다!"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적지 않은 부를 축적했지만 말년은 불행했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후 스위스 제네바에서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의 위대한 삶과 쓸쓸한 죽음 앞에 삼가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지난 해 에베레스트 원정 당시의 일이다. 베테랑급 고산 셰르파들과 원정 대원들이 모두 참가한 작전회의 시간이었다. 고산 셰르파들의 주장은 단순 명확했다. 날씨가 나빠졌으니 임금을 더 달라. 캠프5까지 모든 물자의 수송이 끝나면 일단 그때까지의 임금을 일시불로 지급하라. 원정이 성공하면 보너스를 더 달라. 처음에 나는 그들의 파렴치한 주장에 분노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등정은 명예와 관련된 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등정이란 생활과 관련된 노동일 뿐이다. 누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에게 목숨까지 내어놓으라고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충직한 셰르파들이 자신들을 고용한 ‘사히브’(독일어에서 파생된 말로 ‘주인님’ 정도에 해당한다)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던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현재 히말라야의 곳곳을 누비는 베테랑급 고산 셰르파들은 모두 다 비즈니스맨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다.

그뿐이다. 그들에게 ‘세계 최초의 신루트 개척’이니 ‘먼저 숨져 간 동료 산악인을 위한 추모등반’이니 하는 수식어들은 한낱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위험한 등반이면 그만큼 더 많은 임금과 보너스를 요구할 뿐이다. 그들에게 너희들은 왜 등반의 가치와 자부심을 느끼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이렇게 되묻는다. “너희들의 등반기록에는 왜 우리들이 한 줄도 기록되지 않는 거지?”

그렇다. 솔직히 말하여 ‘공식적인’ 세계 등반사는 꼼꼼히 들여다볼수록 ‘공허한’ 기록이다. 이는 히말라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알피니즘이 태동하고 꽃피운 알프스 지역을 들여다봐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어째서 등반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기록들은 모두 ‘돈 많은 백인 부르주아’들이 독차지하고 있는가.

어째서 이 세상 모든 산의 초등기록은 ‘영국 신사’이거나 ‘국가적 지원을 등에 업은 군인 혹은 정치인’이거나 ‘돈 많은 아시아 재벌을 스폰서로 끌어온 악발이 동양인’들이 싹쓸이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그곳에 오르는 길을 안내한 사람은 없었는가. 그들이 원정에서 사용한 물자들을 그곳까지 날라 다 준 사람은 누구인가.가장 위험한 루트를 개척하고, 능히 정상에 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초등의 영광’을 자신에게 돈을 지급한 사람에게 기꺼이 양보해준 사람은 또 누구인가.

스크린 위에서는 영화배우만 보인다. 그들을 존재 가능하게 해주고 그들이 ‘폼’을 잡을 수 있도록 뒤에서 헌신의 노력을 다한 스태프들의 모습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세계 등반사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 순간에 정상에 서서 제 나라의 국기를 자랑스럽게 펼쳐든 ‘스타 산악인’만이 보이고, 그들을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준 히말라야 고산 셰르파나 알프스 가이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홀대해왔다. 그

러면서 이제 와서 그들이 다만 돈 밖에 모르는 품위 없는 종자들이라며 폄하하려 든다. 우리는 가이드의 도움으로 알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위대한 알프스 등반사에서 그들의 이름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우리?셰르파들의 시체를 넘어 히말라야에 올랐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동전 몇 푼을 던져주고 소리 없이 이곳을 떠나라며 파티장의 뒷문으로 내쫓았다. 만약 그것이 세계등반사의 실체라면 참으로 파렴치하고 부끄러운 기록이다.

연재를 마무리하려는 지금, 나는 히말라야의 셰르파들과 알프스의 가이드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등반사의 모든 기록들은 아예 생성될 수도 없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산악인’이면서도 ‘산악인 열전’에 제 이름을 올릴 수 없었던 비운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기록이 있다.

그들의 기록 속에서 에드워드 윔퍼, 앨버트 머메리, 제프리 윈스롭 영 등은 모두 ‘의뢰인’(client) 혹은 ‘아마추어’(amateur)로 표기된다. 그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산악인’(mountaineer)은 자신들뿐이다. 만약 이들이 등장하지 않는 등반사가 있다면 그것은 허구의 기록이다. 만약 이들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산악인 열전’이 있다면 그것은 허황된 말 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 연재물은 오늘로서 끝이다. 연재의 마지막 인물로 이탈리아의 가이드 출신 산악인 마티아스 추르브리겐(1856~1917)을 선정한 것은 내 죄송스러운 마음의 어설픈 표현이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다른 지면을 통해서라도 알프스 가이드 열전, 히말라야 셰르파 열전, 그리고 한국산악인 열전 같은 것을 집필해보고 싶다. 그 동안 과분한 격려와 애정의 말씀을 전해주신 독자 제현에게 크게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산악문학작가 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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