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38대ㆍ1974~77)이 26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포드 전 대통령은 1월 폐렴을 앓았으며, 8월에는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의 한 병원에서 혈관성형술을 포함한 두 차례의 심장 치료를 받았다.
생존한 전직 대통령으로는 최고령이었던 포드 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의 사막지대 랜초미라지 자택에서 지내왔으며, 부인 베티 여사가 임종 후 타계를 발표했다. 유족은 부인과 마이클, 잭, 스티븐 3명의 아들, 딸 수전이 있다.
포드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선거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됐다. 1974년 8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부통령으로서 대통령 직을 떠안게 된 것이다. 사건 당시 포드가 부통령 직에 있게 된 것도 닉슨의 러닝메이트로 닉슨 행정부 초대 부통령으로 임명된 시어도어 애그뉴가 부패 혐의로 낙마한 뒤 지명받았던 것이니, 행운이 두 번 겹친 셈이다.
포드 전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닉슨 대통령에 대한 조사에 있어서 인정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9월 8일 닉슨의 재임 중 모든 범죄에 대해 특사를 발표함으로써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76년 대선에서 민주당 지미 카터 후보에게 고배를 마시는 결과로 이어졌다.
닉슨 전 대통령이 은폐적이고 음모적인 인물형으로 남아있다면, 포드 전 대통령은 개방적이고 소박하며 직설적인 인물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74년 11월 23일 방한해 박정희 대통령과 회담했다. 가뜩이나 닉슨 전 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에 따라 71년 3월 7사단을 중심으로 주한미군 2만명을 철수시킨 상황이라 박 대통령은 포드 대통령의 방한을 적극 추진했으며 후에 ‘코리아 게이트’ 관련자인 김한조씨의 100만달러 백악관 로비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회담 후 포드는 한미방위공약을 재확인함으로써 닉슨의 주한미군 철수 추진을 백지화했다.
1913년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출생한 포드 전 대통령은 2세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재혼하자 양부인 제럴드 루돌프 포드의 성을 따르게 됐다. 미시건대 미식축구선수 출신이며, 2차대전 때 해군으로 항공모함을 탔다. 25년간 연방의원을 역임했으나, 대통령에 출마할 의지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뉴욕=장인철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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