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면서 얻는 게 더 많죠. 가족간에 대화가 많아지고 더 화목해진 것이 기뻐요.”
김생수(46ㆍSK텔레콤 CR전략실)씨는 지난 10월 서울 천호동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을 모시고 경기도 양주의 자연농장으로 야외나들이를 다녀왔다. 아내와 자녀가 함께 한 가족동반 나들이였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데다 일본 주재원으로 오래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전통적인 대가족문화를 접할 기회를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김씨에게 이 나들이는 매우 특별했다.
“처음 보는 노인들의 주름진 손을 살갑게 잡고 말벗을 해드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 대견했어요. 가족자원봉사를 시작한지 2년째인데 아이들이 타인과 따뜻한 정을 나눌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 흐뭇하죠.”
이영기(38ㆍSK텔레콤 CI본부)씨 가족도 가족자원봉사에 적극적이다. 2005년 안산 ‘코시안의 집’에 다녀온 후 아내 정희선(36)씨와 함께 매년 적어도 한번씩은 가족자원봉사를 다녀오기로 약속, 올해는 지난 2일 거제도 애광원에 다녀왔다. 외동아들 찬혁(8)이와 함께 였다.
당시 이씨는 카드 마술을 배워서 애광원의 장애우들 앞에서 묘기(?)를 보였다.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덕분에 내년 봄에는 그동안 갈고닦은 링 마술과 컵 마술 등을 보여주기 위해 애광원에 다시 방문하기로 선약이 됐다고.
개인이 아닌, 가족이 함께 자원봉사에 나서는 ‘사회성 여가’ 개념이 싹을 틔우고 있다.
사회성 여가는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한 개념으로 여가활동과 사회공헌활동이 한 데 어우러지는 것. 국내에서는 YWCA가 서울과 대전, 광주지부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실시중인 가족자원봉사프로그램이 이런 사회성 여가 개념을 도입한 첫 시도. 2003년부터 높아지는 이혼율과 가족해체 등이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면서 가족문제를 해결하는 매개체로 가족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준비한 것이 사회성 여가 개념으로 확대됐다. 자연, 가족간의 화목과 조화, 경험의 공유와 교육적 효과를 중시하는 참가자들이 많다.
김씨 가족의 경우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에게 삶의 다른 모습도 알게해야한다는 것이 가족자원봉사 참여의 한 계기였다. “2005년 봄 회사에서 실시한 생활보호대상 독거노인 거처 무려 도배봉사 프로그램에 아이들을 함께 데려갔었어요. 당시 다 허물어져가는 달동네 반지하 방을 아이들과 함께 도배했는데 그때 아이들이 깨달은 것이 많았나 봐요. 불우한 이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더군요.”
내친김에 그 해 여름 회사가 YWCA와 손잡고 정식으로 출범한 가족봉사 프로그램에 회원으로 등록, 매번 가족을 대동하고 자원봉사에 나섰다. 아내 박경순(43)씨는 처음엔 “아이들까지 데려갈 필요가 있느냐”며 불만스러워 했다. 한창 공부해야할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은 토ㆍ일요일 마다 학원 스케줄이 빽빽했기 때문. 가뜩 아이들 공부 때문에 주말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처지에 장애우나 독거노인을 보살피기 위해 주말을 몽땅 바친다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
“막상 자원봉사 갔다오니까 아내도 생각이 바뀌었어요. 무엇보다 아이들과 하는 얘기가 늘 ‘공부’ 아니면 ‘학교’였는데 더 따뜻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거든요. 성적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더 중요하잖아요. 인성교육엔 이만큼 좋은 활동이 없는 것 같아요.”
김씨 가족은 이번 겨울방학엔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자원봉사 나들이를 할 계획이다.
이씨의 경우도 외아들에게 산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었다.
“처음엔 거제도 여행도 할 겸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 타인과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해주자는 목표가 있었다”는 이씨는 “처음 코시안의 집에 갔을 때는 서먹해하던 아들이 이번 애광원 방문에서는 스스로 알아서 장애우들을 챙겨주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어린시절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고요, 이런 경험을 통해 가족간에 대화가 많아졌다는 것이 정말 기뻐요.”
한국갤럽이 지난해 조사한 ‘한국인의 자원봉사 활동 트렌드’에 따르면 우리나라 20세 이상 인구중 자원봉사 참여율은 1999년 14.0%에서 2005년 20.5%로 늘었다. 그러나 이는 영국(51%) 미국(44%) 등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더구나 자원봉사자의 58%가 3년내 중도탈락하며, 자원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비율은 전 국민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도 YWCA가 컨설팅을 한 SK텔레콤이 유일하다.
서울YWCA 최정은 팀장은 “자원봉사는 좋은 습관처럼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혼자 자원봉사는 해도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은 꺼??문화가 있지만 가족의 주말나들이를 겸할 수 있는 지속적인 프로그램이 개발된다면 ‘사회성 여가’ 개념자체가 가족의 결속이나 화합을 위해, 또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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