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대표적인 재벌정책인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한 논란은 정치권에서부터 나왔다. 열린우리당 강봉균 정책위의장이 "출총제의 폐지를 논의할 때가 왔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여기에 재계가 일부 정치권의 지원과 경기불황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등에 업고 폐지공세를 펼치면서 출총제 폐지 논란은 더 가열됐다.
3월에 취임한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출총제의 완전폐지로 기울던 논의의 흐름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는 취임 직후"출총제가 왜 있는지 그 이유부터 따져봐야 한다.
바로 순환출자의 폐해가 있기 때문 아니냐"며 "출총제 폐지에 앞서 순환출자의 폐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논의의 초점은 출총제 폐지에서 순환출자 금지로 번져나갔다.
공정위는 출총제의 대안으로 A사→B사→C사→A사로 이어지는 재벌 계열사간 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계획을 만들었다. 재벌 계열사들이 다른 기업에 자유롭게 출자할 수 있도록 하되, 같은 그룹내 계열사간 순환출자만 금지해 가공(架空)의 자산을 만들어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 의결권을 장악하는 폐해를 없애자는 의도였다.
순환출자 해소에 장기간의 유예기간을 두거나, 이미 만들어진 순환출자는 그대로 두고 신규 순환출자만을 금지하는 방안 등 구체적인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재계의 반발은 거셌다. 순환출자를 금지할 경우 재벌총수들의 지배력 확장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재계는"차라리 출총제가 낫다"고 공정위를 비난했다.
11월 들어 부처간 협의가 진행됐고 공정위는 밀리기 시작했다. 권 위원장과 권오규 경제부총리,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의 회동에서 권 위원장은 "공정위가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말에 입장을 바꿨다. 결국 순환출자 금지는 없던 일이 됐고, 출총제 적용 대상기업을 대폭 축소하는 선에서 출총제 논란은 급하게 일단락됐다.
교수 출신 권 위원장의 학자적 이상이 현실논리 앞에 무릎 꿇은 것이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서 공정위가 너무 쉽게 물러났다며 순환출자 금지 방안을 새롭게 꺼내 들고 있어, 출총제 논란은 내년 국회통과 과정에서 재점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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