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특강을 나갔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과거와 현재의 홍보수석을 비교해서 홍보수석의 자질에 대해 말해달라.' 바다이야기, 부동산 문제와 더불어 홍보수석의 어법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고 있을 때였다.
청와대를 출입한 적이 없어서 홍보수석을 비교하긴 힘들다는 전제를 달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국정홍보실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는 은폐됐던 일들이 공개되기 때문이라고.
● 언론, 내부자에서 비판자로
과거에는 언론이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내부자였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씨 때의 홍보수석들은 주요 언론사에 친한 벗을 두었고 인사나 정책방향에서 그들의 충고를 경청했다.
당연히 이들 언론은 권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추한 일은 보도하지 않았고 권력의 향배를 앞서 보도하는 것을 언론의 본령으로 삼았다. 반면 대통령이나 권력을 비판하면 즉시 기관으로 끌려가 치도곤을 맞았다.
이것은 노태우씨 때부터 점차 완화되었지만 언론사에 기관원이 출입하는 것은 김대중 정부 때까지도 여전했다. 그러니 대통령을 비난해도 경찰서조차끌려가지 않는 현재를 과거보다 언론 상황이 나빠졌다고 하는 이들은 후자와는 무관하고 전자와는 익숙한 사람일 것이다.
과거에 정부를 비판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 비판을 삼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언론과 정권은 긴장관계여야 옳다. 그런 점에서 긴장관계를 유도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국정홍보실은 큰 일을 했다.
그래 놓고는 그런 긴장관계에 대해 왜 계속 불평을 늘어놓는가. 나는 너를 우습게 보지만 너는 나를 존중해달라, 이런 관계는 세상에 없다. 그래도 내게는 현재 정부를 비난하는 일부 언론의 방식이 더욱 거슬리긴 한다.
역사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있다. 이 시험지는 당신이 살았던 방식이 100년 200년 뒤 인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으며 어떤 해악을 끼쳤는가 하는 기준으로 그대들이 살아온 날을 평가한다.
불과 26년 전에 권력을 잡기 위한 엄청난 학살 행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독재자의 권력에 합류한 이들이 있고 저항한 이들이 있다. 그 중간에는 나름대로의 전문성, 성실함을 가지고 살아온 이들과 나쁜 짓은 하지 않았으나 목숨과 밥을 내놓기가 아까워 비루하게 권력을 비판하지 못한 이들이 혼재되어 있다.
나는 정의가 도치된 시절에도 기자 자리를 놓지 않으려 했으니 비루했다. 환경운동이나 한살림, 여성노동자회나 진보 출판사의 활동을 소개하며 더 나쁜 상황을 막는다고 자위했다.
독재권력에 붙어서 적극적으로 살았다면 사악하다. 독재에 저항했다면 의롭다. 독재권력의 정부에는 들어갔지만 한계 안에서 올바른 정책을 펴려고 고군분투했다면 비루하되 의롭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지만 그 공으로 사익을 위해 특권을 누렸다면 그건 비루하고 사악하다.
민주화 운동을 해서 감옥에는 갔지만 덕분에 야당 실세가 되어서는 자식을 뒷문입학시킨 이들도 있고 입바른 소리를 해서 지식인 대열에는 들었지만 부동산 투기에 열중했던 이들도 있다.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뿐이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대통령의 발언에 발끈하는 전직 장관 군 수뇌들 가운데는 지금처럼 언론이 군대 문제에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면 이 자리에 못 서있을 사람이 많다. 그들이 지휘부에 있을 때 군에서는 강제징집이 있었고 의문사가 횡횡했다. 자력국방 이야기는 제쳐놓아도 원로라는 이름으로 대접받기에는 죄가 많다.
● 비판 근거는 떳떳해야
과거에는 의로워도 현재는 권력을 추구하면 사악하다. 그러니 언론은 현재의 권력을 견제하라. 그러나 정책이 아니라 어법을 문제삼거나, 사악하고 비루했던 이들의 발언을 빌미삼지는 말아라. 정부 뿐 아니라 의로운 지식인을 비판하는 방식에서도 똑같다.
노무현 정부에게도 부탁한다. 대중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일부 언론의 논조에 설득당해서가 아니다. 이 정부가 들어선 후 집값이 크게 올랐고 빈부 격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정책만 올바로 가면 허튼 소리에 동조할 사람은 많지 않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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