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지방 국립A대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인천의 한 시립연구소 박모(41ㆍ여) 연구원은 학교에 자주 갈 수 없었다. 직장일로 바쁜 데다 학교까지 가려면 차로 네시간 이상 걸렸기 때문이다.
박씨는 논문 작성에 시간이 부족하자 이 대학 지도교수 한모(44)씨에게 논문대필을 부탁했고, 한씨는 시간강사인 제자 이모(34)씨에게 논문 대필을 지시했다. 이씨는 다른 연수기관이 펴낸 논문자료에서 순서나 통계 등을 일부 바꿔 ‘짜깁기’ 논문을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조교 노모(31)씨는 논문심사관련 절차를 조작해 주었다. 이 덕분에 박씨는 7월 손쉽게 박사학위를 땄다.
인천지방경찰청 수사과는 28일 논문 대필과 표절을 지시하고 심사서류 등을 허위로 만든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A대의 한모 교수를 구속했다. 또 표절논문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박씨 등 4명을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의 행동은 대담하고 치밀했다. 우선 논문을 대필한 이씨는 심사과정에서 허위서류를 만들었다. 논문심사 서류인 승낙서, 심사중간보고서, 심사일정표, 논문심사요지서, 심사결과표 등을 임의로 작성했다. 또 조교 노모(31)씨는 한 교수 지시로 박씨 등 3명의 박사학위 논문과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심사 관련 절차를 마음대로 조작했다. 논문심사위원의 도장을 임의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논문심사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논문심사위원 5명의 명의를 도용해 마치 3차례나 심사회의가 열린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는 박씨 같은 사례가 추가로 적발됐다. 석사 및 박사 과정 4명의 논문이 이런 식으로 조작되거나 기존 논문을 베껴 작성된 뒤 엉터리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H교수는 “직장생활을 하는 제자들이 박사학위 논문 작성의 어려움을 호소해 처음에는 논문 지도를 해 주다 사정이 급박해 대필을 하도록 지시했다”면서 “하지만 학위취득을 명분으로 제자들에게 금품을 주고받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지도교수, 시간강사, 조교, 대학원생, 논문 심사위원들이 특정대학 같은 과 선ㆍ후배 사이였다”면서 “H교수의 계좌에서 수백만원~수천만원의 돈이 입금된 사실을 포착, 석ㆍ박사 학위취득자로부터 돈이 흘러 들어왔는지를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부 다른 국립대에서도 논문표절과 대필에 의한 엉터리 석박사 학위 취득사례가 있다는 제보에 따라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송원영 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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