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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달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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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달리는 길'

입력
2006.12.29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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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홍콩에 갔을 때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를 탔던 일이 자주 생각난다. 나라 형편이 하도 답답하고 절망적이어서 그런지 그 에스컬레이터를 생각하면 해방감을 느낀다.

그날 저녁을 같이 먹은 홍콩의 언론인 친구는 내가 묵고 있는 호텔까지 에스컬레이터로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센트럴 마트에서 호텔이 있는 미드 레벨까지 우리는 정말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갈 수 있었다.

그것은 '달리는 길'이었다. 도심에서 빅토리아 산정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길에 에스컬레이터를 놓아서 길이 달리도록 만든 그 기발한 아이디어!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행정력! '달리는 길'에 탑승한 수많은 사람들은 말이 끄는 수레에 탄 사람들처럼 재미있게 보였다.

● 홍콩 에스컬레이터에서 느낀 해방감

길 주변으로 경찰서 형무소 성당 사제관 등 식민지시대의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지나갔다. 식당 바 화랑 상점 등이 줄지어 늘어선 골목마다 인파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길을 만들기 전에 그 일대는 낙후된 옛 동네였는데, 이제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관광명소로 거듭났다고 한다.

20대의 에스컬레이터가 외줄로 연결된 그 길의 길이는 800미터나 된다.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는 에스컬레이터가 도심을 향해 하행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산정을 향해 상행한다. 방향이 안맞는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는 계단길을 이용한다. 높은 지대와 중간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도심의 사무실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출퇴근한다. 에스컬레이터 위에는 단순한 구조의 유리지붕이 있을 뿐 옆으로는 다 열려 있다.

에스컬레이터 길은 1993년 완공되었고 공사비는 3,200만 홍콩달러(40억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길을 유지하려면 전기값이 많이 들겠다"고 내가 말하자 그 언론인 친구는 "전기값은 생각 안해봤다. 이 길이 생기면서 자동차 이용이 감소하고 그에 따라 에너지 소비와 대기오염이 줄었으니 전기값이 문제가 아니다. 낙후된 골목들이 활기찬 문화의 거리로 살아난 것도 중요한 소득이다"라고 말했다.

중간중간에 에스컬레이터를 내리면 다른 거리들과 연결된다. 우리는 소호거리 연결지점에서 내려 바에 들어갔다. 화면에서 프랭크 시나트라가 멋지게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옛날에 신문에 자주 나오던 30년 후, 50년 후를 예측하는 특집기사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 특집에는 '달리는 길'이 자주 나왔다. 자동차가 아닌 길을 타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리라는 공상만화같은 미래예측이었다.

우리가 홍콩처럼 '달리는 길'을 갖지 못한 것은 단지 지리적 여건이 다르기 때문일까. 그것이 유일한 이유라면 다행인데, 그런것 같지 않다. 우리는 꿈꾸고 상상하는 능력, 그것을 현실로 옮기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특히 정치나 행정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해진 것이 아닐까.

연말 모임에서 한 기업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기업의 생명은 꿈과 상상력에서 나온다. 직원들로부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기안문서부터 버려야 한다. 말로, 행동으로, 소리로, 그림이나 만화로, 그들의 창의를 모아야 한다. 창의적인 힘이 없는 조직은 살아남을 수 없다"

● 꿈과 상상력 있는 정치인을 원한다

대통령과 전직 각료들과 퇴직 장성들이 삿대질을 하며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대통령은 연일 '막말'을 쏟아내고, 공정거래위원장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에는 악의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진흙탕에서 싸우는 그들에게 꿈이니 상상이니 강조하는 것은 정신나간 짓일까.

그러나 나는 상상을 멈추고 싶지 않다. 한강에, 남산에, 달동네에 '달리는 길'이 생긴다. 길을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강바람 산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음악을 듣고 신문을 본다…. 행복한 상상이다. 내년 대선에선 상상력이 있는 사람을 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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