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급제는 비정규직 문제의 대안일까, 차별의 제도화 일까?
우리은행이 직무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직무급제 도입을 전제로 비정규직 철폐하기로 한 후 직무급제 도입을 놓고 금융업계를 넘어 정치권ㆍ노동운동 전반으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비정규직 법안이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노동계가 이 법안을 '사실상 비정규직 2년 해고제'라며 반발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직무급제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으로 부각되는 모습이다.
우리은행 노동조합의 비정규직 철폐안은 전격 수용해 이목을 집중시킨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직무급제는 단순히 비정규직 처우의 차별의 철폐한 것 뿐 아니라 직원들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에 따른 급여체제를 갖추려는 것"이라며 "앞으로 단순창구 직군의 임금을 끌어 올리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직군보다 세분화해 성과 평가와 임금을 그에 걸맞게 조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도입된 직무급제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뿐 아니라 현행 단일호봉제의 폐해를 고쳐, 직무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별하는 새로운 인사제도의 근간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각 은행마다 30% 안팎의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 은행 노조들도 우리은행의 직무급제 도입에 대해 대체로 찬성하는 모습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공광규 정책1실장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 요구를 한꺼번에 다 충족시킬 수 없다는 면에서 이번 우리은행의 결정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금융노조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내년 산별교섭 때 우리은행식 해법을 적극 개진할 것을 검토하고 있어 내년 금융권 노사협상의 핵심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사용자측 간사를 맡았던 우리은행 황 행장이 앞장서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향후 타 은행 경영진은 물론 노조들도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계 일각에는 "우리은행의 직무급제가 차별을 제도화하는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임금이 정규직의 40%선에 머무르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시정책이 공표되지 않는다면, 이번 조치는 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라, 계약직이 '무기한 계약직'으로 변하는 것에 그친다는 것이다.
비정규노동센터 남우근 사무국장은 "우리은행의 직무급제 도입은 고용안정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지만, 비정규직의 차별을 단계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계획이 뒤따르지 않는 한 차별을 제도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타산업 경영진은 우리은행의 직무급제 도입이 "사정이 나은 금융권에나 도입될 수 있는 돈 잔치"라며 못마땅한 눈치다. 우리은행 측은 정규직 1만명의 임금 동결분 250억원을 재원으로 비정규직 전환이 이뤄져 추가비용 발생은 없다고 밝혔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직원복리후생과 퇴직급여충당금이 3,000억원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23% 정도되는 비정규직이 이와 동일한 처우를 받으려면 570억원이 넘는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여기에 비정규직 임금인상분은 별도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동응 전무는 "비정규직 고용문제는 원칙적으로 노동시장 상황과 개별 기업 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돼야 한다"며 "우리은행의 직무군제 도입은 그 은행 특수사정에 따라 결정된 것일 뿐이며,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한 것도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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