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소득세법에 의한 '의료비 소득공제'문제로 의료계 전체가 뒤숭숭하다. 의료인 모두가 참담하고도 불안한 심정으로 이 겨울을 맞고 있다.
국민의 편의를 위한 '연말 정산 간소화'방침에는 이의가 없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무리한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세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그 방법과 과정이 정의롭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보험료 교육비 기부금 등과 달리 의료비는 그 대상이 환자가 된다. 의료법 제19조에는 의료행위를 통해서 얻은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하게 돼 있다.
2002년 12월 모 개그우먼의 진료기록을 공개한 혐의로 의사와 사무장에게 법원이 의료법 위반 및 명예훼손죄를 적용, 각각 1,000만원과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것이 그 예가 된다. 아울러 법원은 이는 형법 제317조의 업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의료인 자신들을 포함해서 모든 국민은 환자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가의 안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데도 국가기관은 나의 동의 없이 내 진료기록의 제출을 요청할 수 있는가, 또 모든 의료기관은 정부기관이 요청하면 환자의 허락과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항시 진료기록과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가? 이것이 당면한 문제의 핵심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환자는 의료법과 헌법 위반으로 모든 의료기관을 고소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의료계는 실제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헌법소원 제기도 결정했다. "연말정산 조회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모든 법적 문제를 국세청이 책임질 수 있느냐"는 의사회의 질의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회신이 없다.
이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자료를 제출한 의료인은 환자의 정보와 비밀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회한과 자책으로 오랫동안 괴로워할 수 있으며 환자에게 직접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 제출을 유보한 의료인은 세무조사 등 불이익을 두려워하게 된다. 환자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자료 제출로 인해 받을 피해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법이지만, 의료인은 국민과 환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개정 소득세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법이 안고 있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국세청은 조세행정의 편의를 떠나서 전체 의료인과 환자들이 납득하고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지침을 내려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문경서 서울 광진구 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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