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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아 31년 代母 "천사들이 다시 날개짓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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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아 31년 代母 "천사들이 다시 날개짓하는 그날까지"

입력
2006.12.2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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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정 박자는 맞지 않았지만, 캐럴 소리만큼은 우렁찼다. 60여명의 ‘천사’ 중엔 입 모양을 놀리는 것조차 힘겨운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가 선물 보따리를 들고 ‘마빡이 춤’을 추는 이날만큼은 뒤틀린 얼굴 근육도 기쁜 마음을 감추진 못했다. 22일 연세의료원 내 재활병원 강당에서는 의자보다 휠체어가 많이 보인 가운데 성탄 행사가 열렸다. 이를 지켜보는 박숙자(60) 연세재활학교 교장의 두꺼운 안경 너머가 잠시 촉촉해졌다.

박 교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지체장애 교육기관인 연세재활학교에 1975년에 부임, 무려 31년 동안 제3대 교장으로 일해 온, 특수교육의 대모(代母) 같은 존재다. 64년 재활학교 설립 당시 초대 교장을 지낸 은사인 고(故) 성내운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와 함께 지체장애 아동들을 돌보다 그의 길을 따라 걷게 됐다.

그는 75년에도 직함이 ‘교장 서리’였다. 하지만 직원 하나 두고 ‘사장님’ 소리 듣는 구멍가게 주인과 비슷했다. 자신과 교사 1명 이 20여명의 학생을 돌봐야 했다. 때문에 서무ㆍ상담ㆍ교사ㆍ행정ㆍ경리ㆍ보모ㆍ원무 등 ‘1인 7역’을 맡았다. 학생이 69명으로 불어난 지금은 교사 17명에 교직원이 9명이나 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바쁘다. 박 교장은 “가까이 가면 애들이 하도 안경을 잡아채 몇 개 부러졌다”며 습관적으로 ‘안경이 잘 있나’ 매만졌다.

그가 챙긴 건 학교와 학생 뿐만이 아니다. 학부모들도 주요 상담 대상이었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얘기해주는 건 기본이었다. 그는 “지체장애아 가족의 경우 부부가 합심해도 모자랄 판에 가정 불화까지 겹쳐 이혼하는 예가 적지 않다”며 “본의 아니게 부부 문제나 가정사까지 카운셀링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체장애아의 의사소통 문제도 주된 관심사였다. 일부 지체장애인은 언어 능력이 떨어지고 발음에 장애가 있어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한 마디 입을 떼는 것조차 답답하고 고통스런 경우도 있다. 박 교장은 국내 최초로 ‘블리스심볼(Blissymbol)’을 도입해 가르쳤다. “8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특수교육 워크숍에서 ‘이런 게 있다’는 얘길 듣고 밤잠을 설쳤다”는 그는 전국 각지의 특수학교에 관련 도서와 자료를 전파해 왔다.

블리스심볼이란 쉽게 말해 ‘기호화한 의사소통’을 의미한다. 가령 뇌성마비 아동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고 싶을 때 그림과 글씨가 함께 있는 의사소통판에서 ‘○→ ←’를 손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현재는 단추를 누르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녹음된 음성으로 나오는 전자 기기도 발달해 있다. “학교 일 때문에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아들과 딸이 건강하게 장성해 고마울 따름”이라는 그는 “정년(2008년 8월) 때까지 이 길을 걷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수교육에 헌신하고 국내 병원학교의 모델을 제시한 공로로 26일 제28회 서울교육상(서울시교육청 주관)을 받는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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