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크리스마스 즈음이다 보니 친구들이 잊고 넘어가기 어려운 모양이다. 소식 없던 친구도 문득 전화해 "네 생일 다 돼가지?" 안부를 전한다. 생일잔치가 자연히 망년회를 겸하게 되는데 나 혼자만 한 아름 선물을 받으니 친구들에게 번번이 미안하다.
언젠가부터 당일뿐 아니라 그 어간에 몇 번에 걸친 축하자리를 갖게 됐다. 살아온 세월이 두툼해지니까, 내 친구이면서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인 친구들이 더러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점조직으로 사람을 사귀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우스개로 '내 생일주간'이라 명명했다.
어느새 새로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또 시간에 인색해져 정말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할애한다. "이제 즐겁지 않은 자리 한 구석을 지키는 건 절대 사절이야"라는 식의 말을 종종 듣는다.
지난 토요일, 감기가 들어 기운이 없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좀 울적한 채 친구 화실의 망년회에 갔는데 생일케이크가 준비돼 있었다. 감기를 옮길까봐 누가 좀 촛불을 불어 꺼달라고 부탁했는데 다들 나더러 그냥 끄란다. 촛불은 계속 타 들어가고. 손바람으로 끌까 하다가 사위스런 느낌이 들어 눈 딱 감고 훅 불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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