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평통자문회의 발언을 둘러싼 청와대와 고건 전 총리의 설전은 노 대통령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거듭 확인해 주었다.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인 만큼, 대통령은 정치적 혼란과 갈등의 불씨가 될 정치 발언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양측의 '해석 논란'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사"라는 대통령의 말은, 어떤 언어감각으로 새기든 거명된 당사자에게는 불쾌한 일이다. 따라서 고 전 총리가 가시 돋친 성명을 낸 것이나 청와대가 해명성 반박을 한 것까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고 전 총리의 성명에 유감을 표하며 사과를 요구하고, 청와대 홍보기구가 후속 공세에 나서면서 양측의 설전은 '해석 논란' 수준을 넘어 정치적 고려가 복잡하게 얽힌 정치투쟁으로 변질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는, 고 전 총리가 일단 대응을 유보한 데서 보듯, 청와대의 의사가 더 많이 관철된 듯하다.
미리 메모까지 준비한 노 대통령의 공식연설 외 발언이 우연한 것일 수는 없다. 구체적 동기를 확인할 수야 없지만 그 결과로 빚어진 정치 지형의 변화 조짐에서 추정해 볼 수는 있다.
고 전 총리의 상처가 가장 컸겠지만,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나 정동영 전 의장도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가 이튿날 유죄 확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른바 통합신당 논의의 구심력이 크게 흔들렸다. 이런 흐름은 노 대통령 주변의 공세적 발언이 부쩍 늘어난 데서도 드러난다.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가 다시 한번 돌발 변수에 휘말려 정치적 혼란을 키워 정책 공과에 대한 국민적 평가라는 선거의 기능 자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남은 임기 동안 안정적 국정과 중립적 선거 관리에 매달려야 할 청와대가 정치적 욕구를 앞세우면 정국 혼란과 민생 불안을 부른다. 그러니 그 동안의 민심 이반을 반성하면서 설사 할 말이 있더라도 참고, 특히 정치발언은 삼가는 것이 이 정권의 마지막 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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