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우리 경제는 수치로만 보면 좋은 소식이 많았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연평균 3.6%를 밑돌았던 경제성장률이 5%로 높아졌고, 수출 역시 3,000억 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구석 답답함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출 호조가 내수로 연결되지 않아 내년에 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일 수 있다.
●외환위기 후 금융 변화가 주 원인
그러나 그보다는 부동산 가격 급등, 양극화 심화, 북핵 문제와 전시작전통제권을 둘러싼 정체성 논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집단갈등, 일찍 달아오른 대선경쟁 등 경제에만 전념하기엔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던 한해였던 것 같다.
그 중 부동산 가격 급등에 대해선 그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돌이켜 보면 건설재벌, 강남 투기꾼, 오락가락한 부동산 정책 모두 집값 급등을 가져온 근본 원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금융제도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외환위기 이전 은행들은 기업금융에 치중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위험관리를 이유로 소비자대출,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장려되었다. 그 결과 자금부족으로 전세나 월세에 만족했던 가정들이 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가계대출이 가능해져 갑자기 주택 수요가 몇 배로 늘어난 셈이다. 이에 반해 건설업체의 경영악화와 각종 규제로 주택공급은 축소되었으니 주택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계대출 활성화는 주택투자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주식이나 채권 투자와 달리 주택투자는 은행 돈을 차입할 수 있기에 수익률 제고 효과를 갖는다. 예를 들어 3억원을 주식에 투자하면 연 15% 수익률이 예상되는 반면, 아파트를 구입하면 기대수익률이 10%라고 하자. 자기 돈만 가지고 투자한다면 주식 투자가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은행에서 주식투자 목적으로 돈을 빌릴 수는 없지만 주택담보대출은 용이하게 할 수 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자기 돈 1억원과 은행대출 2억원으로 아파트를 살 경우 3억원의 10%인 3,000만원을 벌게 된다. 자기 돈 1억원의 10%가 아니라 30%인 셈이다. 차입 가능성이 주택투자 수익률을 배가시킨 좋은 예이다.
주택투자 수요가 갑자기 늘어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세금부과, 재건축 규제를 주축으로 집값을 잡으려 했으니 제대로 효과가 날 리 없었다. 진작부터 이자율을 올려야 했다는 견해도 수긍하기 어렵다.
이자율을 올린다고 제도변화로 인해 급격히 늘어난 주택대출이 원상태로 돌아갔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기업의 투자와 채산성만 감소시켰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금융기관의 기업대출이 가계대출로 한꺼번에 쏠리지 않도록 총량규제를 하는 편이 정답이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주택대출에 대해선 별도의 지준금을 부과하고, 은행권과 더불어 비은행권에 대한 규제에 보다 신경을 썼어야 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주택가격의 일정 수준 이하로 규제하자 주택 구입자들이 나머지 금액을 제2금융권을 통해 조달했기 때문이다.
●반값아파트, 같은 실수 반복 않길
주택가격 급등을 이유로 소비자대출제도 자체를 비난해선 안 된다. 이 제도로 인해 집을 장만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은행의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택공급이 따라올 시간적 여유가 없이 너무나 단기간에 기업대출이 소비자대출로 전환된데 있다. 이제 엎질러진 물이 되었으니 증가된 가계대출로 인해 금융권 특히 제2금융권이 부실화하지 않게 노력할 때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반값 아파트 공급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
정부가 땅값을 제공해 아파트를 공급하면 오히려 은행에만 의존해왔던 대출 일부를 정부가 제공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주택투자 수요가 늘어나 아파트 가격이 더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반값 아파트는 정부가 공인한 바다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창용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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