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1년 내내 불야성이 된 건 1980년대 초 야간 통행금지 제도가 없어진 뒤다. 그 전엔 일년에 단 두 번, 크리스마스 이브와 제야에만 야간 통금이 풀렸다. 그래서 애 어른 할 거 없이 그 밤을 지새며 꼬박 집 밖에서 즐기고 싶어 했다. 10대 때 나는 개신교 신자도 아니면서 몇 번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교회에서 보냈다.
교회 다니는 친구를 따라 그들의 축제에 슬쩍 끼어 든 것이다. 서대문 부근의 한 교회에서 전자오르간 연주와 성가대 합창을 들으며 황홀경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정말 에그조틱 별천지였다. 크리스마스 뒤면 얼마간 교회에 나가 노래책을 펴들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찬송가를 따라 부르곤 했다.
며칠 전 신문에서 파리의 운하를 따라 빨간색 소형 텐트들이 펼쳐진 사진을 봤다. 노숙자의 겨울을 체험하려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텐트라 한다. 따뜻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도 겨울이 무서울 것이다.
그들은 어떤 기분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까? 크리스마스 아침, 자기 집 앞에서 얼어 죽은 성냥팔이 소녀를 보게 된 사람은 깊은 연민과 함께 다친 자존심을 느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불행한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