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외채 규모 1,000억 달러 돌파’는 외환위기의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꺼림칙한 소식이다. 특히 1,080억 달러 가운데 올들어서만 421억 달러가 늘어나는 가파른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총외채에서 단기외채 비중은 43.3%로, 2000년 말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단기외채가 922억 달러로 외환보유액 244억 달러보다 4배 가까이 많아 지급불능 상태, 즉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지금 상황이 그 때만큼 위험한 정도는 아니다. 우선 외환보유액이 1,165억 달러로 넉넉해 대외지급능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외국에서 빌린 돈도 많지만, 빌려준 돈도 많아 한국은 450억 달러의 순채권국이다. 단기외채 내역을 뜯어보더라도 수출업체가 매도한 선물환을 매입하기 위한 일시적 목적이거나, 외국계 은행의 본점과 국내 지점 간 거래의 비중이 높아 비교적 건전한 편이다.
그렇다고 단기외채의 급격한 증가를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대외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외환거래가 완전 자유화된 상황에서는 외화유동성의 위험이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올들어 유입된 단기외채의 90% 이상은 은행권에서 빌려왔다. 외형 확장 차원에서 외화자금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은행들이 이렇게 용감하게 외화 차입에 나서는 배경에는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는 달러가 넘쳐나 환율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외채 증가가 유동성 증가로 이어져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만에 하나 주택가격 거품이 붕괴한다면 은행의 단기외채 상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단기외채 증가는 그 자체보다는 이로 인한 환율 하락의 가속화와 시중 유동성 증가,은행의 건전성 악화 같은 부작용이 더 문제다. 은행의 건전성 차원에서도 과도한 외채 도입을 자제하고, 환율 하락에 대한 기대심리를 잠재우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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