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유진룡 문화관광부 차관이 취임 6개월 만에 경질됐다. 한 여름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바다이야기’ 사건의 서막이었다. “청와대의 인사청탁을 거절한 데 대한 보복성 인사”라는 지적이 나오더니 사건은 사행성 성인오락기 비리로 번졌다.
때맞춰 “성인오락기와 상품권 문제를 컨트롤하지 못했다”며 정책 실패를 사실상 자인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터져 나왔다. ‘도박 공화국’의 추악한 실체는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게임산업을 관장하는 문화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부실한 심의 및 사후 관리, 대통령 조카의 연루설, 상품권 인ㆍ허가 과정에서의 로비 의혹 등이 꼬리를 물면서 사태는 게임업계 전반과 정치권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도박 광풍의 진원지는 경품용 상품권이었다. 혼탁한 시장질서를 바로잡겠다며 지난해 7월 도입한 상품권 지정제도는 역설적으로 정부가 상품권을 공식‘도박용 칩’으로 보증해 준 셈이었다. 업체들은 황금알을 낳는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권은 뒤늦게 불 끄기에 나섰다. 상품권을 포함한 경품제도를 폐지하고, 성인오락실을 허가제로 전환하는 등 ‘사행성게임 근절 대책’을 연일 쏟아냈다.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의 계속된 단속과 수사로 매일 밤 불야성을 이루던 2만여곳의 오락실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도박 광풍에 휩쓸린 수많은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이미 털린 뒤였다.
부패의 검은 사슬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4개월째 진행 중인 검찰 수사로 문화부 간부, 국회의원 보좌관, 상품권 업체 대표, 조직폭력배, 영등위 직원 등 30여명이 철창 신세를 졌다. 그러나 비리의 최종 종착역인 정치권에 대한 수사는 이제 시작이다. 검찰은 개인비리나 직무유기 의혹이 제기된 정ㆍ관계 인사에 대한 1차 조사를 마무리했지만 뚜렷한 혐의 입증에는 실패했다. 연루 대상이 너무 많아 수사는 해를 넘길 것 같다.
반면 “정권의 부패 문제로만 몰고 가는 바람에 사태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태 직후 정치권이 호들갑을 떨며 긴급 발의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은 정치 일정 에 밀려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게임물에 대한 등급 심의를 전담하기 위해 신설한 게임물등급위원회도 인적 구성만 겨우 마쳤을 뿐이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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