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해외파 누른 국내파
외국계 컨설팅회사(기업에 경영 등에 관한 자문을 해 주는 회사)에서 일하는 김기호(35)씨는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의 상경계 학과를 졸업했다. 해외 유명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컨설턴트들이 즐비한 회사에서 초라하기 그지없는 학력이다. 그러나 김씨는 억대 연봉자다. 1998년 입사 동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억대 연봉 반열에 올랐다.
그의 성공 비결은 집요함이다. 그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외국계 컨설팅회사를 목표로 공부했다. 당시 컨설팅업계에서 일하던 선배를 따라다니며 컨설팅 관련 최신 정보와 업계 분위기를 익혔다. “그 선배 제가 무척 귀찮았을 거에요. 선배는 ‘아내보다 너랑 오히려 더 많은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수시로 전화하고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꼭 만났거든요.” 신문 등을 보며 국내 기업들의 경영문화 흐름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다. 해외파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를 공략해 자신만의 경쟁력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김씨는 현재 기업에 마케팅과 아웃소싱 등을 자문하는 전략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 내년 업무 준비를 하느라 분주해 그 흔한 송년회도 안 간다. “돈 많이 받아 뭐하냐구요? 돈은 둘째 문제예요. 해외파가 득세하는 컨설팅업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 정신 없답니다. 하하.”
문제아 시절에 쌓은 인맥이 금맥으로
펀드매니저 이명헌(38)씨는 “고교 시절엔 유명한 문제아 였다”며 웃는다. 서울에 있는 고교를 나온 그는 학교 친구들과 록그룹을 만들어 전국을 휘젓고 다녔다. “우리 록그룹 실력이 꽤 좋았어요. 다른 학교 록밴드와 합동공연도 하고 지방 고교 축제에도 많이 불려 다녔어요.” 당연이 공부는 뒷전이었다. 그는 “아직도 내가 어떻게 대학에 갈 수 있었는지는 나 자신도 의문”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접한 투자라는 개념에 매료된 것이다. “그 전엔 공부고 뭐고 음악이 제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아버지 월급만으로 살아온 저에게 ‘돈이 돈을 번다’는 얘기는 큰 충격이었어요.” 그는 과 친구들과 주식 동아리를 만들어 경제 공부와 실전 투자에 빠져들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졸업 때는 주식 수익금으로 아버지에게 양복, 어머니에겐 진주 목걸이를 사 드렸다.
그는 “고교 때 전국을 돌며 쌓았던 인맥이 억대 연봉의 일등공신”이라고 말했다. “매달 관심이 가는 지방 기업을 찾아가 그 회사의 정보를 파악하는데 고교 시절에 공연하며 만났던 그 지역 친구들이 기업 사장과 안면을 트게 도와주는 등 큰 힘이 됐어요. 덕분에 좋은 기업을 골라 투자할 수 있었죠. 연봉에서 그 친구들 술 사주는 데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지만 절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블루오션 공략한 36세 ‘소년 이사’
36세 젊은 나이에 외국계 광고대행사 기획이사로 일하고 있는 박창호씨의 회사 내 별명은 ‘소년 이사’다. 올 연봉은 1억4,000만원. 미국 보스턴대에서 광고를 전공해 영어도 유창한 박씨는 “내가 생각해도 내 나이에 비해 좀 많이 받기는 한 것 같다”며 “입사 8년 만에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유학과 영어 때문이 아니다”고 말했다. “시장성은 있지만 경쟁자가 별로 없는 틈새를 노린 블루오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이라며 웃었다.
92년 유학을 간 그는 일찌감치 이벤트, 전시, PPL(Product Placementㆍ영화 드라마 등에 상품을 등장시키는 광고), 스폰서십 등 간접광고의 파급력에 눈을 떴다. “당시 함께 공부하던 동료들은 TV 신문 라디오 등 직접광고에만 몰두했어요. 남들 다 하는 걸 해선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고 생각했죠. 간접광고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연구 보고서들도 심심찮게 나오던 때 였어요.” 당시 간접광고의 중요성에 열을 올리는 그를 향한 주위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97년에 귀국하자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전체 광고시장은 쪼그라들었지만 직접광고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드는 간접광고시장은 커져 갔다. 간접광고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박씨는 진가를 발휘했다. 미래를 보는 안목이 그를 입사 8년 만에 억대 연봉자로 만든 것이다.
‘한 우물 파기’로 성공한 보따리 장사
김정호(45)씨도 남들이 하지 않는 미개척 분야를 선점해 대박을 터트린 경우다. 국내 한 정보통신업체의 임원인 그는 지난해까지 ‘보따리 장사’로 불리는 대학 시간강사 였다.
그는 90년부터 시작된 미국 유학 시절에 ‘멀티미디어 디자인’ 석사과정을 밟으며 UI(User Interfaceㆍ컴퓨터 휴대폰 등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메뉴 구성이나 시스템 디자인하는 것)를 접했다. UI는 당시 국내에 매우 생소한 분야였다. 그는 석사 논문 주제로 UI를 선택했을 만큼 이 분야에 대단한 흥미를 보였다.
그는 UI 디자인 분야 총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앞으로 UI분야가 중요해질 것을 예상해 담당 부서를 새로 만들었는데 마땅한 전문가가 없다며 함께 일하자고 하더군요. 물론 저한텐 황송한 대우죠. 묵묵히 한 우물만 판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연봉협상 시즌엔 '일하는 티' 내라
국내 한 정보통신업체에 다니는 김경수(34) 과장은 "요즘 정치하느라 바쁘다"며 웃는다. 담당 부장과 마주치면 어느 때보다 살갑게 인사하고, 부장이 내키지 않는 업무를 맡겨도 군소리 없이 척척 해낸다. 평소보다 일도 열심히 한다.
김 과장은 "이 모든 것이 내년 1월 초 연봉 협상을 염두에 둔 전략"이라고 말한다. "1년간 성과를 계량화한 자기평가서를 토대로 협상을 하지만 그래도 협상 직전 인상이 50%는 좌우해요. 몸값을 올리려면 업무 성과뿐만 아니라 막판에 평가 담당자의 눈에 들게 행동하는 정치력도 중요합니다."
연말과 연시는 연봉협상의 계절이다. 직장인들은 자신의 몸값을 어떻게 끌어 올려야 할까. 전문가들은 "부단한 경력개발과 함께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투자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평판이 안 좋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정치력도 강조한다.
고액 연봉자들의 한결 같은 비결은 성실과 근면이다. '아침형 인간'은 직장인 성공의 진리다. 고액 연봉자들은 하루에 4, 5시간만 자고 바쁜 와중에도 한 달에 두 세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로비와 인맥도 몸값의 주요 변수다. '좋은 인간 관계'는 '좋은 거래'로 이어져 업무 성과로 나타난다. 다만 업무와 경력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만 골라 사귀면 계산적인 '얌체형 마당발'로 찍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또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이 상사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평소에 주의해야 한다. 사실과 다른 뜬소문도 많이 모이다 보면 사실인 것처럼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적을 주기마다 수치화하고 업데이트하는 것도 중요하다. 6개월이나 1년에 한번씩 자신의 현재 모습을 체크하고 목표 이행 상황 등을 점검한다. 경력은 회사가 아니라 자신이 관리하는 것이다. 업무 성과를 돈으로 환산해 데이터로 구축해 놓는 것도 몸값 올리기에 좋은 방법이다.
● 연봉협상 전략
1. 협상시즌에는 더욱 일하는 티를 내라= 상사들이 직원들의 근무태도를 눈 여겨 볼 때다
2. 평가자료는 수치화하라= 회사에 기여한 것을 객관적인 자료로 내 놓아야 성과를 입증할 수 있다
3. 자료를 암기한 뒤 협상하라= 협상 도중에 말이 막혀 필요한 데이터를 들추는 순간 협상의 주도권은 회사로 넘어간다
4. 동종 직종의 연봉을 조사하라=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 인상폭을 제시할 수 있다
5. 마지노선을 정하라= 희망연봉의 최고치와 최저치를 정해 놓고 그 사이 금액으로 협상한다
6. 절대 먼저 말하지 마라= 협상은 게임이다. 자신의 카드를 먼저 내 놓으면 이미 진 게임이다. "얼마를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말고 "얼마를 주실 겁니까"라고 묻는다
7. 연봉에 포함되는 것들도 챙겨라= 기본적인 연봉 이외에 수당 계약금 휴가비 교육비 등도 중요한 항목이다
<자료: 인크루트>자료:>
김일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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