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밤, 서울 성북구 보문동 노동사목회관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스페인어로 진행된 조촐하지만 엄숙한 성탄미사에 이어 오붓한 성탄 잔치가 펼쳐졌다. 행사에 참석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중남미 지역의 전통요리를 나누며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함께 했다.
보문동 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는 홍세안(60) 신부. 그는 주변에서 '천사 신부님'으로 통한다. 특히 중남미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그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중남미 노동자들은 곤경에 처해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어 손해를 보기 일쑤이다. 불법체류자라면 필시 강제 추방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수준급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홍 신부는 이들의 열악한 처지를 상담해주고 때론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름만 보면 영락없는 한국인이지만 사실 그는 '미셸 롱상'이라는 프랑스 이름을 가진 벽안의 외국인이다.
이날 행사는 그가 이들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선물이다. 대부분 천주교 신자이지만 크리스마스에도 일을 해야 하는 중남미 노동자들의 처지를 감안해 하루 앞당겨 행사를 연 것이다.
홍 신부는 1974년 선교사 자격으로 한국을 찾은 후부터 외국인 노동자와 인연을 맺었다. 선교활동을 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법 체류자란 약점 때문에 말 못할 고통과 차별을 겪는 것을 보고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식 이름까지 갖춘 것도 이곳에서 베풂의 삶을 실천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92년부터 8년간 벨기에 가톨릭노동장년회에서 국제지도신부로 일하면서 스페인어를 배운 덕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서 근무하면서 중남미 출신 노동자를 돕는 데 헌신하고 있다.
홍 신부는 앞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 체류 신분으로 내모는 노동법을 개선하는 활동에 온 힘을 쏟을 생각이다. 그는 "강제 출국의 두려움 속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며 "이들이 정식 고용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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