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그룹인 삼성의 지배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건희 회장 일가 지배권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삼성의 향후 대응방식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새 금산법은 금융회사가 같은 기업집단의 비(非)금융 계열사 주식 중 5%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토록 하고 있다. 이미 보유 중인 초과 지분의 경우 1997년 3월 이전에 취득분은 2년 유예 후 의결권을 제한하고, 97년 3월 이후 부분은 즉시 의결권을 제한하고 5년 안에 자발적으로 해소하지 않으면 금융감독위원장이 처분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새 금산법의 직접적인 사정권에 드는 그룹은 삼성. 삼성은 계열사중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25.6% 갖고 있으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7.26% 소유하고 있다.
98년과 99년 각각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취득한 삼성카드는 새 금산법에 따라 지분 25.6% 중 5% 초과 지분인 20.6%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금지되며, 5년 안에 이를 처분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97년 이전부터 삼성전자 지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금감위원장이 처분명령을 내릴 수는 없지만 유예 기간이 지난 2년 후에는 5%가 넘는 부분(2.26%)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룹 안팎에서는 일단 2년과 5년의 유예기간이 있는 만큼 당장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삼성카드가 지분을 처분해도,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계열사 지분이 압도적으로 많아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5년 내에 지분을 처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뾰족한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룹측은 삼성생명 해법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2년 후부터는 이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9월말 현재 그룹계열사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은 삼성생명(7.26%) 삼성물산(4.02%) 삼성화재(1.26%) 등 계열사와 이 회장 본인(1.86%)과 가족(1.31%)을 모두 합쳐도 13.93%에 불과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무는 “금산법으로 이 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하락하면 현재도 취약한 삼성전자의 경영권이 외국계 자본의 공격에 더욱 노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원론적으로 따지면 이 회장 일가가 사재를 털어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여야 하겠지만, 시가총액이 100조원에 달하는 걸 감안하면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지분을 1% 늘리는데 1조원이 필요한 것을 고려하면, 이 회장 일가나 그룹 계열사들이 지분을 사들이는데 한계가 있다.
전경련은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 경영권 위협이 가시화할 가능성이 커진 만큼 한국판 ‘엑슨-플로리오(Exxon-Florio) 법’ 제정이나 상법의 경영권 방어장치 추가 등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88년 제정된 엑슨-플로리오법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외국 자본의 자국 기업 인수를 금지하는 법안이다.
삼성은 유예 기간이 있는 만큼 당장 행동에 나서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대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룹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수익성을 바탕으로 주주중시경영과 투명경영에 더욱 힘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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