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는 다짐했다. ‘범인 잡다 순직한 우리 막둥이. 자랑스럽다. 암, 울면 천치지.’ 이를 악 물었다. 웬걸 주책없는 눈물은 아비 속은 안중에도 없다. 아비 가슴에 잠든 아들은 유품으로 남은 경찰 정복에 보풀만 일어도 아비의 울음을 깨웠다.
그뿐이랴. 아비의 파란 넥타이, 엄마의 노란 반지, 조카의 하얀 유모차, 노래대회 때 탄 빨간 밥통…. 녀석이 선물로 남긴 숨결 없는 물건엔 녀석이 스며 있다.
20일은 녀석이 떠난 지 4개월이다. 아비는 늦은 밤 아들의 손님(기자)을 맞았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 웅크린 단층집은 고즈넉했다. 삭풍은 슬픔에 짓눌린 집 마당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이종원(55) 권형자(51)씨 부부가 삼형제를 키워낸 곳이다.
손님을 맞을 처지는 아니었다. 익산시에서 근무하는 이씨는 한달 넘게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을 하느라 꼭두새벽부터 자정까지 일하고 있다. 그는 “아들 덕분에 잠깐 쉬게 됐다”고 했다.
안방은 막내 기홍(29ㆍ경장)씨 차지였다. “땅속에 있으면 얼마나 춥겠어요. 집에 오면 따뜻한 아랫목에 쉬게 하려고….” 죽은 아들에게 방을 내준 이씨 부부는 건넌방에서 잔다. 안방은 기홍씨가 아주 잠깐 비운 듯 했다. 잘 정돈된 정복과 소지품, 노래솜씨를 뽐냈을 기타. 5만7,000원이 담긴 지갑도 보였다. 이씨는 “‘그날’ 녀석의 호주머니에 있던 그대로”라고 했다.
그날은 7월 22일이다. 잊고 싶은 날이다. 그날 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기홍씨는 범인의 칼에 찔렸다. 대정맥과 대동맥이 모두 잘렸다. 의식을 잃는 순간에도 범인의 바지춤을 놓지 않았다. 깨나지 못하고 8월 21일 밤 숨졌다. 범인은 1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했다.
아비는 그날보다 막둥이를 기억하게 하고 싶다. 행여 놓칠세라 온 집안을 뒤져 아들의 빛바랜 사진과 3일에 한번 꼴로 죽은 아들에게 썼다는 편지를 꺼냈다. ‘불러보고 또 불러봐도 그립기만 한 우리 막내. 내가 죽어 너를 살릴 수 있다면 난 그 길을 스스럼없이 가련다.’(11월 16일)
아비는 눈물을 그쳤다. “법질서를 지키는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아들의 죽음이 그렇게 외칩니다.” 그 밤 부부는 밤새도록 잠을 뒤척였다.
죽은 아들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기홍씨는 한달 동안 투병했지만 끝내 유언을 남기지 못했다. 가족에겐 한으로 남았다. 그가 생전에 했던 말을 편지 형식으로 엮었다.
아버지, 뚱이(애칭)에요. 식사는 자셨소(하루도 거르지 않은 안부전화의 첫마디).
엄마, 통장에 돈은 확인했소. 할머니 용돈 10만원 챙겨 줬는데 이제 못 하요. 조카 상준이 돌이 내년 2월인데 자전거도 못 사주겠소(사고 전날 기홍씨는 엄마에게 월급을 부쳤다).
둘째 형, 형제 경찰관 나올 거라 자랑했는데 늠름한 경찰관이 됐네. 삶은 달걀에 맥주 한잔해야 하는데 아쉽네(함께 자취하면서 경찰관을 꿈꿨다. 기홍씨는 지난해, 형 태홍씨는 8월 경찰관이 됐다).
큰 형, 국민을 위하는 멋진 공무원이 되겠다고 했잖아요. 부모님 잘 모셔요(큰 형 재홍(교도관)씨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
하늘나라에서 막내 기홍이가.
완주=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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