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발언을 놓고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계개편 논란에 휩싸인 현실 정치와 대선에 개입하고 있어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이 표류하고, 중립적 대선관리자가 사라져 대선정국이 대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청와대측은 노 대통령 발언에 정치적 배경이나 노림수는 없다고 극구 강조하고 있다. 러나 이달 초 당원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나 고건 전 총리, 열리우리당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 등 대선주자를 차례로 건드린 이번 언급에 비추어 노 대통령이 여권의 정계개편이나 대선 레이스를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고 할 안희정, 김병준씨가 최근 일제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이런 행보는 여당 내 다수파를 적으로 돌리는 한편 야당으로부터는 공정한 대선관리자의 자격을 의심 받는 결과를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해, 여당의 비협조로 인한 국정운영 차질과 극심한 대선 불공정 시비가 예고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4일 “대통령이 정계개편이나 대선에 관여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며 “특히 대통령의 대선과정 개입은 나라를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의 한 중진의원은 “이 상태로 대통령의 대선 심판자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며 “여당을 탈당 하든지, 정치개입 발언을 하지 말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선이 있던 해에는 정치에선 손을 떼고 여당을 탈당, 형식적으로 중간자 입장에서 대선을 관리했다.
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역점 정책은 부동산 정책과 교육 대책, 한미 FTA협상 마무리, 그리고 사법개혁 등이다. 모두 국회의 협조가 절대적인 사안이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와 여당 다수파의 적대적 관계로는 국회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여당이 정기국회에서 노 대통령이 그토록 의미를 강조해온 사법개혁안 처리를 힘 한번 제대로 쓰지 않고 내년으로 미룬 것은 시사적이다. 당청관계가 이렇지 않았을 때도 여당을 설득하는 책임과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한 노 대통령이다.
박명호 동국대 정외과 교수는 “주요 국정현안은 아무도 신경 쓰지않는 국정의 공백기가 올 것”이라며 “청와대와 여당이 각자의 대선게임에 들어간 것이기에 국가 현안에 대해서도 자기 진영의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논리가 개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택 숭실대 정외과 교수도 “정부와 여당이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는 “노 대통령은 이 같은 국정 난맥상이 현실화할 경우 여야 기득권층의 반발에 의한 것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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