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특수를 노린 흥행물과 각종 지원 제도의 수혜를 받은 작품의 마무리 공연으로 채워지는 연말, 공연물의 홍수 속에서 한 제목 앞에 자석처럼 이끌려 선다. 세밑에 꼭 필요한 울림, <고요> 라는 제목의 연극이다. 신생 극단 11월. 고요>
미군을 상대로 문신을 새기는 어미와 간호 조무사로 인턴과 연애중인 큰 딸,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정 많은 작은 딸 등 세 식구를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들이 펼쳐진다. 소아마비인 문신 시술사 양금순과 맹인 안마사 박진구의 늦은 사랑 이야기가 은근하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달 구경, 노을 구경, 동물원 구경 타령을 하는 박진구의 반어적 아이러니에 기대어 극의 많은 부분이 흘러간다.
죽은 딸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에 몸에 새겨 기억하고자 하는 안마사 사내의 사연을 극 말미에 밝힘으로써, 극은 계획한 슬픔을 설핏 드러낸다. 인간사 희로애락 중 유독 고통과 관련된 부분에서 연극은 부러 담담하고 고요해진다. 진흙탕과도 같은 갈등 요소를 극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가라앉혀, 맑은 윗물만 떠서 연극을 빚으려는 뜻이다.
제목에서부터 휴지(休止)와 침묵의 잦은 사용, 대사의 수사적 조탁에 이르기까지 시적 야심을 풍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은 의도로는 존재하되 작품 안에 무르익지는 않았다. 작가도 연출도 대부분의 배우들도 신인이기에 이 극단이 꿈꾸는 진흙탕의 현실을 가라 앉힌 고요한 삶의 내공을 제대로 전하는 데는 10년 후 쯤을 예약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10년을 이 극단이 견딜 수 있을까? 창단 공연이면서도 프로그램엔 그 흔한 출사표도, 슬로건도, 창단 구성원들에 관한 소개 한 줄이 없다. 워크숍 형태로 만들어진, 습작기에 쓴 작품들이 자주 연극 현장으로 흘러와 스미는 연극 현실을 종종 보게 된다. 이 젊은 피가 과연 단발성 프로젝트 공연으로 끝나지 않고 긍정적인 변화와 결과를 선도할 것인가?
지금은 암전의 계절. 맹꽁이도, 풀무치도, 여치도 자연의 막 뒤에 숨어버렸다. 화사한 등장을 위하여 캄캄한 퇴장이 필요한 것이다. 한 편의 연극이 관객과 만나기 위해서도 역시 암전의 시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지원 제도가 젊은이들에게 이 암중모색의 시기를 견딜힘을 빼앗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세밑이다. 극단 11월, 고재귀 작 전인철 연출, 12월 31일까지 씨어터 디아더.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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