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는 가장 극단적이고도 집단적인 형태가 전체주의다. 인류는 불과 반세기 전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 저 부정의 역사를 경험했고, 언제 어떤 형태로 그 망령이 벌떡 일어서 짓밟을 지 모르는 인간의 이름으로 살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이진우ㆍ박미애 옮김, 한길사)이 반세기 만에 번역 출간됐다. 그 자신 유대인으로 나치 전체주의의 간접 희생자였고, 전체주의에 대해 가장 먼저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던 저자의 첫 저서이다. 책은 전체주의가 어디서 발현하고 어떻게 운동ㆍ발전하는지, 그 망령이 노리는 인간의 약한 고리는 무엇이며, 대비책은 있는지에 대한 그의 대답이 실려있다. 전체주의의>
책을 오해 없이 읽기 위해서는 아렌트의 질문의 처음에 놓인 ‘이해’라는 단어를 이해해야 한다. “이해란 잔악무도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란 현실에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 그에게 이해는 정치사상가로서 비관과 낙관을 넘어서는 연구 방법론이자 전제다. 전체주의의 이해를 위해 저자는 그 뿌리인 ‘반유대주의’, 줄기인 ‘제국주의’를 살핀다. 그 각 부위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훼손되고 말살되는지를 분석한다.
봉건적 계급사회의 붕괴와 신분 해방으로 탄생한 ‘대중’, 개성을 상실한 대중 집단이 폭력적 정치 집단에 의해 도구화ㆍ조직화하면서 탄생하는 ‘폭민’, 산업혁명과 19세기 제국주의시대 이후 대중의 조직화와 폭민화 과정의 배경이 되는 군중의 소외와 고독….
저자가 제시하는 전체주의 망령에 대항하는 부적, 다시 말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치는 자유다. 전체주의가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면서 인간 세상 전체를 부정하고자 했음에도 “인간의 마음에서 끝내 지우지 못한”자유에의 사랑이다.
책을 번역한 이진우 계명대 총장은 “세계화라는 자본시장의 운동, 정보화라는 기술문명의 운동, 생명복제라는 생명공학 운동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지금, 전체주의에 관한 아렌트의 말은 성찰의 시금석이 된다”고 썼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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