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밀리면 與 신당파와 통합 차질 우려"따돌림 당했다면 독선·오기 탓" 비판
신중한 행보를 보여온 고건 전 총리가 23일 성명서까지 발표하며 ‘고건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였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정면 반박했다. 성명 내용도 ‘자가당착, 자기부정, 오만과 독선’ 등 강경한 단어들로 채워졌다. 정치권은 “고 전 총리가 노 대통령 및 참여정부와 분명한 선긋기 및 차별화에 나선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고 전 총리는 성명을 통해 “노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면 그것은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외면하고 오만과 독선에 빠져들어 국정을 편 결과”라며 “노 대통령이 스스로 인정하는 ‘고립’은 국민을 적과 아군으로 구분하는 편가르기, ‘나누기 정치’로 일관한 정치력 부재의 귀결”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성명 발표 후 서울 연지동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고 전 총리의 표정에는 노기가 남아 있었다. 성명 내용이 유례 없이 강경하다고 하자 고 전 총리는 “그런 것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를 맞아 권한대행으로서 국가 위기상황을 극복한 것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의 몫”이라고 했다.
고 전 총리가 노 대통령과의 정면 승부를 택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를 지냈다는 점 때문에 그동안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를 조절해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정면 공격으로 고 전 총리도 그전보다는 홀가분한 입장에서 참여정부를 비판할 수 있게 됐다. 고 전 총리 캠프 내에서는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게 지지율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고 전 총리는 범여권의 정계개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여당의 신당파를 ‘지역주의 회귀자’로 매도한 노 대통령에게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다음은 고 전 총리와의 일문 일답.
-성명 내용이 강경하다.
“그런 것 아니다. 내가 늘 해오던 얘기 중에서 지금 상황에 맞는 말을 모은 것 뿐이다.”
-대통령이 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나.
“내가 좀 여쭤보고 싶다.”
-대통령 발언에 대해 국민들은 어떤 심정일 것 같나.
“국가 최고지도자의 언행은 정제되고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노 대통령 발언이 오히려 고 전 총리 지지율에 도움이 될 것이란 말도 있는데.
“………” (고개만 가로 저음)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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