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월 만에 재개된 6자 회담은 1년여 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금융제재 문제에 가로막혀 소득 없이 종료돼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북한의 핵폐기 의사를 확인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졌던 이번 6자회담이 성과없이 끝남에 따라 이제 핵 폐기 초기단계 이행을 위해 파격적인 대북제안을 했던 미국의 향후 행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간선거 패배를 계기로 대북 유화책을 폈던 미국의 조지 W 부시행정부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또 다시 대북 강공책을 꺼내들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만큼 미국은 이번 회담에 임한 북한의 자세에 대한 미국의 실망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의 숀 매코맥 대변인이 "성과가 없다면 특정외교트랙을 재평가해야 한다"며 6자 회담 무용론을 시사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측이 이번 회담을 통해 핵 폐기에 대한 북측의 협상의지가 없다고 판단을 내릴 경우 향후 6자 회담은 상당기간 공전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번에 북핵 협상과 별개로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계좌 동결문제를 논의할 북미의 금융 실무회의가 내년 1월 재개가 예정돼 있지만 극적 타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 국내법적 문제가 걸려있는데다 위조지폐 유통 등 불법행위에 대해 북측이 확실한 재발방지책을 제시해야만 미국이 움직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6자 당사국은 "가장 이른 기회에"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6자 회담 재개 합의를 했지만 실상 언제 재개가 가능할 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6자 회담에 정통한 정부 핵심당국자는 "이번 회담에서 미측의 제안에 대해 북측이 답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며 "북측이 거부한 걸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제안에 대해 북측의 변화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측은 이번 회담에서 북측의 구미를 당길만한 상당히 파격적이고 포괄적인 제안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북측이 시간을 갖고 이에 대한 충분한 검토 후 자세 변화를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북측이 이를 대북적대시 정책으로 치부하면서 계속 BDA 문제에 매달릴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가 가속화하는 대결국면이 펼쳐질 수 밖에 없다.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이를 염두에 둔 듯 "대북제재를 가속화할 경우 억지력을 강화할 수 밖에 없다"며 핵실험 재개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베이징=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北-美 끝까지 신경전… 양자접촉도 못해
시종 평행선을 달린 북미간 대립 때문에 6자 회담이 결국 성과 없이 끝났다.
회담 종료 직후인 오후 7시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댜오위타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금융)제재를 해제하지 않는 미국이 우리의 핵 시설 가동 중단과 검증을 요구했다”며 “우리는 이에 반대하고 우리의 제안을 돌아가서 연구해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강렬한 어조는 아니었지만 단호했다. 김 부상은 추가 핵실험에 대해 “우리는 미국의 당근과 채찍에 대화와 방패로 맞서고 있다”며 “방패는 우리의 억지력을 더욱 향상시킨다는 것”이라고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는 이날 오전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발언에 대한 반박이다. 힐 차관보는 숙소인 베이징 세인트레지스 호텔을 나서며 “북한은 회담의 지향점인 한반도 비핵화에 진지함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미 양측은 다음 회담 일정을 놓고도 신경전을 폈다. 북측은 일정을 잡는데 주저했고, 미국은 성과도 없이 마냥 회담을 진행할 수 없다며 논의를 사실상 하지않다고 한다.
북미는 이날 양자 접촉도 진행하지 않았다. 중국을 사이에 둔 간접 대화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때문에 장외에선 미국이 제기한 ‘6자회담 무용론’을 흘려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되기도 했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6자 회담이라는 외교적 트랙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표시, 북한의 태도 전환과 중국의 중재강화를 촉구했다.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은 이런 정황을 의식한 듯 6자 회담 수석대표들을 만나 “회담 결과가 기대보다 낫다”며 물타기를 시도했으나 냉랭한 분위기를 풀지는 못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라이스·레비 차관 등 BDA관련 잇단 강경 발언
미 고위 당국자들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과 관련된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북한의 해제 요구가 북핵 6자회담의 최대 장애물임이 확인된 상황에서도 BDA 문제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1일 AP통신 등과의 회견에서“명백히 다른 사안이고 북한의 요구대로 (실무그룹에서) 다뤄지는 문제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우리가 6자회담에서 해야 하는 일로부터 다른 곳으로 방향이 틀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또 “우리는 이들이 별개의 문제임을 아주 분명히 해왔다”면서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핵 폐기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게 있다고 믿을만한 근거를 주지 못했으며 우리는 이와 관련해 북한을 시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총괄지휘하고 있는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차관도 “북한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금융거래 관계의 복구이겠지만 이는 그들이 합법적 거래자임을 전세계에 납득시키기 전에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레비 차관은 앞서 BDA에 대해 “거래의 근거도 묻지 않은 채 북한 요원들이 비밀리에 수백만 달러의 현금을 입출금 하는 것을 적극 도왔다”면서 “BDA 직원들이 그 같은 거래를 묵인하는 대가로 사례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또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핵 문제와 BDA 문제는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면서 “다른 걸 위해서 하나를 바꾸거나 사안이 다른 문제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불법행동에 대해 다른 방법을 찾아서는 안 된다”고 강경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어 “6자회담에서 원칙에 계속 집중하면 결국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당연히 그 같은 외교 트랙을 재평가해야 한다”며 6자회담 틀에 대한 재검토를 시사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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