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답답함이 울분으로 폭발자신을 피해자 규정, 지지층 결집 의도도
노무현 대통령의 21일 민주평통 발언 파장이 심상찮다. 고건 전 총리 등 당사자는 말 할 것도 없고 열에 아홉은 대통령의 거친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무슨 생각에 이런 발언을 쏟아냈을까. 대통령의 입을 통해, 그것도 공식석상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격렬하고 원색적이었던 탓에 일부에선 “우발적인 게 아니냐”고 할 정도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날 예정보다 50분이나 더 많은 1시간10분 동안 전시작전권환수, 한미관계, 대북송금수사 등 외교 안보현안을 조목조목 짚었고 그때마다 메모지를 꺼냈다. 발언내용을 미리 준비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윤태영 대변인도 22일 “인사말씀이 예정돼 있어 주제에 대해 적어가신 것”이라며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지난 4년간 한 것을 설명했다”라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대통령의) 표현을 갖고 뭐라고 하는 데 메시지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표현을 풍부하게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언급이었는데 말하는 도중 강도 높은 표현이 섞였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아울러 고 전 총리 관련 발언을 적극 진화했다. 윤 대변인은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목적에서 한 인사가 실패했다는 의미이지, 고 전 총리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거나 인품이나 역량을 평가한 게 아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결국 최근 10%대를 맴도는 지지율 등 정치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답답함이 ‘네 탓’이라는 특유의 오기와 뒤섞여 발언 도중 울분으로 폭발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노 대통령은 격정적으로 참여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지지 층에 도움을 청한 것 같다. ‘굴러온 돌’ 등 언급에선 자신을 소수자, 피해자로 규정해 전선을 형성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굳이 고 전 총리를 거론한 데서도 정치적 메시지가 감지된다. 범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고 전 총리와 그를 한 축으로 하는 통합신당 창당 움직임에 대한 거부의사로 풀이된다. 그러나 발언 후 비등한 비판여론을 볼 때 노 대통령이 무슨 계산을 했다기 보다는, 특유의 스타일 때문에 속에 있던 말을 참지 못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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