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거룩해야 할 동네에 거룩하지 못한 소식이 많은 한 해였다. 불교계도 개신교계도 수행이나 구원과 같은 종교적 과제와는 동떨어진 문제들로 시끄러웠다.
불교는 비리와 잡음으로 눈총을 받았다. 공주의 천년 고찰 마곡사가 주지 임명 과정 때 오간 뇌물 때문에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는 불교계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고, 조계종의 최고 입법기구인 중앙종회 선거는 타락 금권선거로 규탄을 받았다. 마곡사 압수수색에 대해 마곡사 스님들은 불교 탄압이라고 항의 했지만 바깥의 시선은 달랐다. 시민단체인 참여불교재가연대는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지 말라며 엄정 수사를 촉구했다. 중앙종회 선거에서도 이 단체는 적극적인 감시 활동을 하며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개신교 내 보수 진영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사학법 개정 등 정치 현안에 적극 개입해 반대투쟁에 앞장섬으로써 세를 과시했다. 이들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뭉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하는 대형 집회로 여름을 보낸 데 이어, 연말에는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집단 삭발식, 단식, 대규모 기도회로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거룩한 투쟁’이라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볼썽 사나운 지나친 행동이라는 지적도 많다.
한편으로는 한국 교회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지난 10년간 천주교 신자는 74.4%나 늘었는데, 개신교 신자는 반대로 1.6% 줄었다는 통계청 발표가 결정적인 자극점이 됐다. 교회의 세속화 경향을 반성하고, 건강한 교회의 방향을 찾는 세미나와 모임 등이 줄을 이었다.
종교계 올해의 인물 3인을 꼽는다면, 8월에 타계한 강원용 목사, 2월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추기경이 된 정진석 추기경, 11월 여의도 순복음교회 차기 지도자로 선출된 이영훈 목사를 들 수 있다.
정 추기경의 탄생은 한국 천주교의 경사다. 1969년 김수환 추기경의 서품에 이어 37년 만에 추기경이 나옴으로써 한국은 2명의 추기경을 갖게 됐다. 추기경은 교황을 보필하면서 전세계 천주교 신자들을 직접 통치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이는 한국 천주교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상징한다.
개신교는 교회 안팎에서 존경을 받았던 큰 어른 강원용 목사를 잃었다. 종교간 대화에 앞장서고 한국 교회 발전과 사회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그가 올 여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빈 자리는 갈수록 더욱 허전하게 느껴진다.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조용기 목사를 이을 담임목사로 이영훈 목사를 선출한 것은 올해 개신교계의 빅뉴스다. 신자 수 75만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이 교회가 비밀투표로 차기 지도자를 선택한 것은 국내 대형 교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지명이나 대물림이 일반적인 국내 대형 교회들의 지도자 선출 관행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불교와 재가불교 종단인 진각종은 가을에 최고 지도자가 바뀌었다. 원불교 총인에는 경산 장응철 종사가, 진각종 총인에는 도흔 종사가 선출됐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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