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겸 화가 한젬마(37)씨의 책 대필 논란으로 출판계가 들썩이고 있다. 양식 있는 출판인들은 차제에 남의 체험과 감성을 저자의 것으로 속이는 비윤리적 대필 관행을 고치자며 자숙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정작 한씨는 "법적 조치" 운운하며 "대필이 아니다"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문제의 책을 펴낸 샘터사도 "3년간 공들인 걸 인정해 달라. 기자가 출판계의 생리를 잘 모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실 이번 논란은 이름만 빌려준 정지영 아나운서의 대역 파문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씨가 책에 쏟은 땀방울은 마땅히 인정 받아야 한다. '한젬마 지음'으로 발간된 4권의 책을 꼼꼼히 읽은 사람이라면 미술작품을 고답적 해석이 아닌 소소한 일상으로 풀어낸 역량에 탄복할 수 밖에 없다.
한 출판계 인사는 "한씨가 그림에서 얘기를 끄집어 내는 능력이 출중하다"고도 했다. 그만큼 한씨가 관여한 책들이 독자에게 주는 '선물'은 만만치 않다.
문제는 독자들을 속였다는 점이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한씨의 경험과 감성과 문체를 담은 책이라고 믿었을 독자들의 배신감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샘터사는 출간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의 속살을 깎으면서 많은 시간을 투여해 깊이 있는 사색의 알이 박힌 글을 쓰고자 노력한' '화가의 생애를 생생한 느낌의 언어로 뽑아 낸' 등의 화려한 수사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한씨와 출판사가 이처럼 강조한 내용의 상당부분이 대필작가(그들 표현으론 구성작가)의 땀과 노력의 결실로 드러났다.
책은 자신의 철학과 사색에서 구구절절 흘러나오는 삶의 값진 보배다. 한씨와 샘터사는 책을 기획하고 포장하는 수준의 역할을 저자로 둔갑시킨 데 대해 마땅히 독자들에게 해명할 책임이 있다. 그들 주장대로 "한씨가 직접 쓴 내용을 작가가 다듬었을 뿐"이라면, 직접 썼다는 그 초고를 공개하면 될 일이다. 대필 판단은 한씨가 아닌, 독자의 몫이다.
안형영 기획취재팀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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