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반의 여왕’은 한국인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였다. 피겨스케이팅은 러시아와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면 변변한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선수에게 ‘피겨 여왕’은 그림의 떡이자 일종의 성역(聖域)이었다.
그러나 16세 소녀 김연아(군포수리고)가 편견을 뒤집었다. 김연아는 지난 16일 밤(한국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벌어진 2006~07국제빙상연맹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싱글에서 184.20점을 얻어 지난해 우승자 아사다 마오(172.52점)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연아의 우승은 한국 피겨스케이팅 101년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다. 스케이트가 발에 맞지 않아 훈련이 부족한데다 허리 통증이 심해 허리에 테이프를 칭칭 감은 가운데 따낸 금메달이라 더욱 값졌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1일 “2006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3월)에서 우승한 데 이어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제패한 김연아가 돈이 없어서 훈련을 못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훈련비용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는 훈련비 걱정 없이 마음껏 해외 전지훈련을 갈 수 있게 됐다.
우승의 기쁨을 뒤로 한 채 이날부터 연습에 들어간 김연아는 “실력이 나보다 뛰어난 아사다가 실수한 탓에 우승했다”고 말했다. 세계 정상에 올랐지만 실력은 아직 아사다에 미치지 못한다는 고백. “앞으로는 실력에서도 아사다를 이기고 싶다”는 당찬 각오도 잊지 않았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김연아는 내년 1월 중국 장춘에서 벌어질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 아사다를 상대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하는 김연아는 3월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 ‘은반의 여왕’ 수성에 나선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