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狂風)은 연초부터 불기 시작했다. 지난해 8ㆍ31대책의 약효도 잠시 뿐,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값은 다시 급등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재건축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3ㆍ30대책을 내놓았지만, 미쳐버린 시장은 이미 '대책' 자체에도 면역력이 생긴 상태였다.
이미 타고 있는 불길에 기름을 쏟아부은 것은 판교였다. 강남집값을 떨어뜨리기 위해(수요대체효과) 터를 닦은 판교는, 이미 투기 내음 자욱한 시장의 눈엔 단순한 신도시로만 비춰지지 않았다. 판교는 순식간에 대박을 예약한 로또로 변질됐고, 강남은 물론 인근 분당 용인지역의 아파트가격까지 끌어올리고 말았다.
모든 것은 정책신뢰 상실 때문이었다. 참여정부 들어 숱하게 쏟아진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집값 상승→정부대책 발표→집값 상승'이란 악순환만 거듭될 뿐이었다.
그 중심에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있었다. 그는 수요억제를 골자로 한 참여정부 부동산대책을 주도하며,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시장투기세력에 대해 고개를 꼿꼿이 세워왔다.
그런 추 전 장관도 폭등하는 집값 앞에는 다급했던 모양이다. 판교 2차 분양과 파주ㆍ운정지구 및 은평 뉴타운 고가분양 영향으로 추석이후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그는 설익은 추가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불붙은 시장은 신도시 건설계획 자체를 집값억제책 아닌 또 하나의 투기기회로 받아들였고, 수도권 신도시 후보 지역의 아파트값은 한꺼번에 폭발했다.
결과는 낙마. 추 전 장관 외에도 부동산정책을 주도했거나 혹은 말실수를 한 정부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부동산광풍에 떨어진 추 전 장관은 정부정책의 신뢰상실로 집약되는 현 주택시장 불안의 근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11ㆍ15대책 이후 부동산시장은 극단적인 눈치장세로 접어들었다. 버블붕괴 우려 속에 주택담보대출규제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 정치권은 '반값 아파트'정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대선용이라 실현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광풍은 잠시 멈췄지만, 자욱한 안개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광풍인지, 대형거품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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