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선생님께서 전교조 위원장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은 나에게 그야말로 개인적인 감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1년 전 이즈음 저는 아주 우연찮게 선생님을 전교조 서울지부 회의실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만남 자리에서의 주제는 '학교 혁신'이었죠.
당시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수석교사가 될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지난 1년 동안 공교육의 여러 광경을 실제로 겪은 한 쬐그만 아이의 학부모가 되어 있습니다.
● '누구도 교육 기대 안하는' 공교육
무엇보다 선생님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아이들 속으로, 학부모 곁으로 다가서는 전교조가 되겠다"고 밝힌 포부는 바로 1년 전에 마주쳤던 그 자리에서 오간 얘기와 지난 1년간의 공교육 체험을 되살렸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그대로 전해드렸으면 합니다.
#광경1. 아이들의 상당수가 아침마다 학교에 가기 싫다면서 부모들과 엉기는데, 가기 싫은 이유야 가지각색이지만, 어떤 경우든 선생님이 좋다거나 즐겁게 해준다는 얘기가 안 나오는 것은 분명합니다.
#광경2. 제가 아는 학부모들은 모두 우리 정진화 선생님 또래의 386세대들이 압도적입니다. 이들은 자녀들을 통해 학교에서 얼마나 교육받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간접 평가 능력이 있습니다. 이들의 입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뭔가 모르는데, "학교에서" "선생님"이 "알 때까지" 가르쳐 준다는 말입니다.
#광경3. 그런데 아이들이 무언가 모자란다고 했을 때 주변 학부모들 가운데 선생님께 상담 가는 분을 한 분도 보지 못했습니다. 교사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 내 자녀를 인질로 학부모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인물로 종종 비방되기도 합니다.
#광경4. 이런 가운데 제 아이의 학급에서는 벌써 5명이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외국 나가는 사정은 각각이지만 어떤 경우든 보다 나은 교육에 대한 열망이 상당히 상위의 이유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광경 5.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전교조 소속 선생님들이 있다면 사정은 훨씬 나아지리라고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학부모도 그 얘기를 진지하게 믿지 않았습니다. 이미 교사들은 상당한 기득권을 누리는 권력인물로 우리 일상에 현존하기 시작하고 전교조는 그런 기득권의 옹호자로 비치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대학에서는 교대와 사범대가 계속 상종가를 치고 있습니다. 나는 공교육이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공교육은 굳건합니다. 다만 누구도 거기에서 교육을 기대하지 않는 그런 집단으로 굳건해지고 있습니다.
● 선생님들 자체 평가기준 세우길
저희가 스쳐만났던 작년 이맘때 그 자리에서 저는 선생님들에게 교육부의 평가제를 거부하는 대신 선생님들 스스로 학생들을 기준으로 이런 자체 평가기준을 세워보면 어떤가 말씀드렸댔습니다.
- 선생님께 들은 것이 있다.
- 선생님께 배운 것이 있다.
- 선생님께 말한 것이 있다.
-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무엇이 더 나아졌다.
- 학생은 '나'(선생님)를 만나 무엇이 변했으며, 나는 그(녀)의 무엇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런 물음을 자기에게 던져 스스로 자신이 부족함을 개선하는 그런 자기반성형 평가제를 선생님이 도입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고립되지 않는 전교조'의 구원군은 선생님들 자신이고, 선생님들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면 그 강고한 교육부, 그 영악한 학부모들이 모두 선생님들의 응원군이 될 것입니다. 새해 내내 전교조와 정선생님께 좋은 해가 되기를 빌겠습니다.
홍윤기ㆍ동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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