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한 달 전에 열린우리당에서 비공개 특강을 하면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가 성난 얼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나치게 개혁에 집착하다가 융통성 없고 너무나 단호하고 쌀쌀하고 성난 얼굴이 됐고, 그런 얼굴로 국민을 쳐다보고 있으니 국민도 성난 얼굴로 대하게 됐다는 것이다. 성난 얼굴에 담긴 정서가 정당한 분노이며 순정한 의분이라면 탓할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 문제다.
국민을 노려보는 성난 얼굴들
이 정부만큼 국민이 고위 공직자들의 얼굴과 표정에 신경을 쓰고 눈치를 보며 살게 만든 정부는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을 가리켜 남을 조소하고 조롱하는 표정이라고 말한 일이 있지만, 조소ㆍ조롱을 당하면서 눈치 보지 않을 도리는 없다.
유씨는 장관이 된 다음에 얼굴이 좀 달라진 것 같기는 하다. 그런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웃는 바람에 '피식장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사람도 있다. 저 사람이 제 정신인가 하면서도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분명히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헷갈리게 된다.
각종 연말모임에서는 여전히 노무현정부와 그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가고 있다. 그 중에서 외모와 신체적 특징에 관한 언급이나 유머는 인신공격에 가까워 좀 심하다 싶으면서도 대체적인 국민정서의 반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도 낀 어느 모임에서 한 사람이 몇몇 고위인사를 언급하며 꼭 미라같이 생겼다고 말했다(요즘은 공무원들이 오히려 더 심하게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해골이나 살모사 머리라고 해야 더 맞는다고 주장했다.
미라같다는 말은 얼굴에 표정이 없고 생기가 없다는 뜻이며 성마르고 괴팍하고 강팍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야말로 성난 얼굴로 핏대를 올리며 국민을 노려보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행정부의 또 다른 얼굴은 쌀강아지의 이미지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쌀밥만 먹고 큰 강아지처럼 말끔한 얼굴에 미끈한 차림새다. 그런데 정체를 잘 모르겠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공직이 제공하는 안온함과 공직이 보장하는 내밀함 속에 숨어 자폐적 안락을 향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문불출하는 은둔형 폐인을 일본인들은 히키고모리라고 한다는데, 이 사람들도 그런 인상을 준다.
그러나 쌀강아지는 주인에게는 아주 잘 한다. 옛 선비들은 小人閑居爲不善(소인한거위불선), 소인은 한가하면 나쁜 짓을 한다고 해서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한다는 뜻으로 愼獨齋(신독재)라는 아호를 즐겨 지었다. 그들이 신독의 자세를 갖추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생기ㆍ선의를 갖춘 품성이 중요
이 두 가지 얼굴의 문제점은 생기와 선의가 없다는 점이다. 고위공직이란 쉽게 말해 고위 서비스업 종사직인데, 자신들이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특히 가장 문제인 것은 선의랄까 호의랄까, 영어로 말하면 굿윌이 결여된 점이다. 인간과 사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품성과 자질이 부족하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진정성과 선의, 온기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다르다. 듣는 사람은 금세 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얼마 전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이념과 인격의 분리현상을 지적하면서 품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역시 품성이며, 인간의 얼굴은 품성의 표현장치이며 노출매체다.
기업은 한결같이 좋은 이미지를 지닌 사람을 광고모델로 선호한다. 좋은 이미지의 구성요소가 얼굴만은 아니지만 사실은 얼굴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공직만큼 중요한 서비스직, 정부만큼 막강한 기업은 없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행정부 사람들은 얼굴을 바꿀 필요가 있다. 40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이 브랜드와 이미지시대에 스스로도 힘겨울 텐데 왜 굳이 그런 얼굴들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곧 개각도 한다는데 지치고 힘들어 하는 국민들을 좀 편안하고 푸근하게 만들어 주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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