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노사 합의로 내년 3월부터 전체 직원의 30%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금융권을 포함한 대규모 사업장에서 처음인 이번 결정은 노조가 내년 정규직 임금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키로 하는 등 임금부분을 양보하고, 사측은 고용안정과 복지를 보장하는 성의를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돋보인다.
비정규직 문제의 실마리는 민주노총 계열의 맹목적 선전투쟁이 아니라 단위 사업장 내의 기득권 포기와 절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범례를 보여준 것이다.
물론 우리은행의 사례가 깔끔한 것만은 아니다. 대상이 영업점 창구와 후선 사무직, 콜센터 등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기간근로자 3,100여명이어서 900여명의 파견근로자 문제가 남아 있는 데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복지ㆍ임금개선 로드맵 등도 원칙만 나와 있어 이행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12조여원의 공적자금을 지원 받은 은행이 1인당 영업이익 목표 등 정부와 맺은 경영이행약정(MOU)에 아랑곳없이 비정규직 해법의 총대를 멘 것도 시비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체 근로자의 40%에 가까운 540만명의 비정규직(546만명) 문제는 법으로 강제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노동현장의 특성과 실상을 노사가 잘 이해하고, 고통분담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공감대가 없으면 힘들게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관련법은 비정규직을 사업장에서 쫓아내는 악법이 되고, 기득권에 연연하는 노사의 대립은 한층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은행의 경우가 '여유있는 사업장의 특수 샘플'로 격하되지 않으려면 노사, 특히 비정규직을 끌어 안은 노조의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차별폐지 차원을 넘어 생산성 향상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실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다.
비정규직을 위한답시고 파업투쟁을 즐기며 경쟁력 추락을 자초하는 현대차 등 대형 사업장의 잘못된 관행을 국민들이 느끼고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쏟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우리은행의 실험은 성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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