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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복간된 불온시집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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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복간된 불온시집 '상실'

입력
2006.12.2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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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그는 ‘불온시인’이었다. 1975년 민음사에서 나온 첫 시집을 그는 세상에서 삭제당했다. 불온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이 불운한 시인은 입을 꾹 다물고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않았다. 다시 문학으로 귀환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최 민(62) 시인의 그 ‘문제적’ 시집 <상실> 이 문학동네를 통해 30년 만에 복간됐다. 발간 당시 젊은 시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던, 진짜 ‘나’를 찾아가는 진한 성장통의 기록이다. 지난해 오랜 침묵을 깨고 생애 두 번째 시집 <어느날 꿈에> (창비)를 냈던 시인은 “두 번째 시집을 내면서 쑥스럽고 겸연쩍었던 느낌에 더해 이번에는 감추고 있었던 초라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켜버린 듯한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오랫동안 어두운 데 있다가 갑자기 환한 데로 나와 눈부신 것 같은 느낌”이라고도 말했다.

<상실> 의 시인은 길 위에서 머뭇거린다. 정체성을 찾아 헤메도는 이 시인은 “나 자신의 것 이외엔 모두/ 알고 있”는 나는 “언제나/ 나는 모른다 비열하게도/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고 고뇌의 중얼거림을 멈추지 못한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 물음에 무작정 떠남으로 맞서지만, 그 노력은 끝내 무용하다. “떠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잊어버리려고 연애를/ 하지만 내 목마름의 창문이 항상 불타고 있”( <바람> )고, 여행은 “싸움을 피해 영창을 피해 고문을 피해 죽음을 피해 도망다니는 길”( <여행> )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집은 후반부에 이르러 나 자신의 문제에서 주변의 문제로 시선의 외연을 확대한다. 시인이 “이름 없는 이들이 한데 모여/ 제각기 얼굴 빛내며 노래하는 곳/ …가자 훤히 동터오는 네거리로”(<노래> )라고 노래할 때, 그는 꼭 편력시대를 마감한 괴테의 주인공 ‘빌헬름 마이스터’ 같다.

지난 30년을 민중미술 운동가로, 번역가로 보낸 시인은 파리 제1대학 조형예술학부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몰래 소장하고 있던 ‘불온서적’을 문학동네에 넘겨줘 부활의 계기를 만든 김정환 시인은 “최 민의 시집 <상실> 의 복간으로 현대문학사의 빠진 이빨 하나를 다시 심을 수는 있어도, 완전히 뜯어고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은 이미 저질러졌지만 <상실> 은 부단히 그 저질러진 문학의 방향을 교정해야 한다고 속삭임으로 절규할 것”이라고 시집 해설에 썼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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