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디자이너 등등 삼척동자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는 의미에서 ‘국민’을 접두어로 사용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누구나 입는 옷에는 ‘국민 교복’ 정도의 이름을 붙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올 겨울 알파카 코트가 그 국민교복의 대열에 올랐다. 겨울 초입만 해도 솜을 넣어 누빈 패딩코트의 인기가 예상됐던 것과 달리 지금 거리는 알파카 소재로 넘쳐난다.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악지대에서 사육되는 낙타과의 동물인 알파카가 2006년 겨울 한국의 거리를 휩쓴 사연은 뭘까.
며칠 전 점심을 함께 한 40대중반 직장여성의 불평은 이랬다. “고급 캐시미어로 만든 매끈한 코트 한 벌 살려고 백화점 여성복 매장을 다 뒤졌는데 없어. 다 알파카야. 알파카가 멋스럽긴 해도 2,3년 입으면 털이 뭉쳐서 싫거든. 아무리 유행이라도 그렇지, 소재 선택의 자유가 너무 없는 것 아냐?”
그러고보니 매장에 걸린 옷마다 알파카 일색이다. 롯데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모피가 대세였다면, 올해는 알파카 소재가 매출을 주도하고 있다”고 전한다. 여성 캐릭터브랜드 미샤 홍보실 박주연 실장은 “겨울 코트물량중 55%가 알파카 소재로 지난 해 대비 35%이상 증가했다”고 말한다.
알파카는 털이 가늘고 길어서 주로 융단이나 의류에 사용된다. 자연스러운 광택에 가볍고 보온성도 뛰어난 고급 천연소재다. 올 겨울 유독 두드러진 알파카의 활약은 트렌드 측면에서는 미니멀리즘 패션의 부활에 빚을 지고 있다. 장식은 최소화하고 소재의 고급스러움과 60년대 스타일의 복고적인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미니멀리즘이 알파카 특유의 고급스럽고 포근한 물성을 부각시켰다는 분석. 비키 디자인실 이선화 실장은 “장식이 아닌 소재로 겨울철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면을 부각시키는 데는 알파카 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특히 알파카는 폭신한 이미지이면서도 얇고 가벼워 코트를 만들 때조차 요즘 인기 있는 허리를 묶는 스타일이나 소매 끝이나 어깨부위에 주름을 넣어 봉긋하게 부풀리는 등의 디자인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날씨의 영향도 크다. 따뜻한 겨울이 될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나오면서 업체 마다 모피나 패딩 물량을 줄이고 대신 가벼운 알파카 물량을 충분히 준비했다. 신원 홍보실 강추경씨는 “국내 소비자들이 갈수록 고급소재를 선호하는 추세라 업체들마다 벌써 2년전부터 알파카 원단을 대거 사들였기 때문에 이번 겨울 일종의 밀어내기 식으로 원단을 죄다 소화한 측면도 없지않다”고 귀띔한다. 이로 인해 알파카 원단가가 낮아져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에 시장에 나온 것도 인기몰이에 한 몫 했다고 분석한다. 비교적 고급 캐릭터 브랜드들의 제품은 보통 90만~140만원대 이지만 중가 브랜드들의 경우 40만원대까지 가격을 낮춘 제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유행에 적극 동참하는 소비자들 구매력이 큰 힘이 됐다. 한 패션업체 임원은 “한국사람의 고급소재에 대한 집착은 해외에서도 정평이 있다”며 “알파카의 경우 그동안 안쓰인 것은 아니지만 올해 복고풍과 미니멀리즘을 가장 잘 표현하는 소재로 지목된 것이 일종의 패드(fadㆍ갑작스럽게 인기를 얻는 현상)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의 패션감각에 가장 잘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털 뭉침 현상은 동물 털을 가공한 소재의 숙명. 따라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우선 압력에 의해서 털이 눌리거나 마찰에 상하는 것을 주의한다. 착용한 상태서 장시간 앉아있는 것은 삼가고 어깨에 메는 가방 대신 손에 드는 가방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털이 뭉치거나 한쪽 방향으로 누워서 특유의 광택이 없어졌다면 스팀타월을 사용해보자. 따끈한 물에 적신 타월을 대었다 뗀 후 빗으로 털을 가볍게 쓸어주는 것을 2,3회 반복한다. 물기를 잘 털고 나서 그늘에서 말리면 털이 제자리를 잡으면서 특유의 광택이 살아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보관시에는 습기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옷장에 방습제를 넣어두고 한달에 1,2회는 통풍을 시켜준다. 비닐 백 대신 통풍이 되는 옷커버를 씌워줘야 한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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