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참여정부 첫 총리로 고건 전 총리를 기용한 데 대해 “중간에 선 사람이 양쪽을 끌어당기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그런 결과가 됐다”며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사”라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고 총리가 다리가 되어 그(사회지도층)쪽하고 나하고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랬는데 오히려 저하고 참여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왕따가 되는 그런 체제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보수와 진보의 가교 역할을 기대하고 고 전 총리를 기용했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으나 노 대통령이 범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한 것은 대선 개입으로 비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또 “링컨 대통령의 포용 인사는 제가 (대선 경선의 경쟁자였던) 김근태씨나 정동영씨를 내각에 기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저는 비슷하게 하고도 (비판자로부터)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사니까 힘들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북핵 해결의 걸림돌인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계좌 동결 조치와 관련해 “지난해 9ㆍ19 공동성명을 내기 2~3일 전에 미 재무부에서 계좌동결 조치를 해버렸다”며 “미 국무부가 미처 몰랐던 것 아닌가라고 볼 수도 있고, 나쁘게 보면 (미국 행정부 내의)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직 국방장관들의 전시작전권 환수 반대 운동 등에 대해 “자기 군대 작전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국방장관이오,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을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것이냐”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북치고, 장구치고 요란 떨지 않아도 충분히 안전을 지켜낼 만한 국력과 군사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관계에 대해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거역할 수 없으나 최소한 자주국가로서의 체면은 유지해야 될 것 아니냐”며 “때때로 한번씩 배짱이라도 내볼 수 있어야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모든 것이 노무현 하는 것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니겠느냐” “국방 문제에서 노 대통령이 더 나쁘게 한 것이 뭐가 있느냐” “노무현 정부는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하지만 할 일은 해야 된다” 등의 격정적인 언급을 하면서 참여정부 성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고건 전 총리를 참여정부 초대 총리로 기용한 것에 대해 “실패한 인사”라고 말한 것은 우선적으로는 고 전 총리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다. 하지만 사실상 ‘고 전 총리는 차기 대권 주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가 담긴 고 전 총리 흠집내기성 발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대선 개입 발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래서 당 안팎의 파장이 적지 않다.
말 그대로 보면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외교 안보 관련 얘기를 하던 중 나왔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솔직한 아쉬움의 표현이다. 노 대통령이 정권 초기 보수층을 껴안기 위해 고 전 총리를 기용했지만 고 전 총리가 보수와 진보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아무런 성과를 못 얻었다는 얘기다. “중간에 선 사람(고 전 총리)이 양쪽을 끌어당기지 못했다”는 노 대통령 말은 이런 뜻이다.
하지만 이날 발언은 정치적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고 전 총리가 통합신당을 추진하고 있고,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신당 논의가 격렬한 갈등을 빚고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노 대통령이 민감한 시기에 고 전 총리 비판 발언을 한 것은 ‘고 전 총리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신당은 지역당”발언에 이어 고 전 총리와의 연대를 염두에 두고 있는 여당의 신당파들에게 제동을 거는 경고성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특히 고 전 총리가 최근 노 대통령을 강력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이 이에 대한 강력한 반박을 한 것으로도 읽힌다. 고 전 총리에게 ‘대통령을 비판할 입장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준 셈이다.
당장 파장이 크다. 고 전 총리는 직접 대응은 자제했지만 측근의 입을 빌어 “저의가 뭐냐”며 불쾌감을 표했다. 여당 내 신당파에서도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고서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은 “범여권에서 그나마 버텨주는 후보인데 그렇게 폄하한다면 범여권이 몰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 발언으로 고 전 총리가 타격을 입을 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노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고 전 총리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다는 관측도 있다.
고건 전 총리는 21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총리로 자신을 기용한 것을 '실패한 인사'라고 규정한데 대해 직접 대응을 삼갔지만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 전 총리는 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자세히 보고 받았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고 전총리의 캠프에선 격한 반응들이 튀어 나왔다.
한 측근은 "탄핵 사태 당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한 데 대해 고마워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인신 공격성 발언을 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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