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靜中動)의 한 해였다. 걸출한 신인의 탄생도, 미래파의 등장 같은 뚜렷한 경향의 변화도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올해는 지난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시는 어느 때보다 다산의 풍요를 누렸고, 소설 부문에선 개성과 실험성으로 무장한 젊은 소설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시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집이 쏟아졌다. 총 116권(문학사상사 추산)의 시집이 발간됐는데, 특히 오랜 만에 기지개를 켠 중진 시인들의 작품집이 많았다. 김사인 시인이 19년 만에 낸 <가만히 좋아하는> 으로 서정의 진수를 펼쳐보였고, 마종기, 남진우, 문태준, 강정, 최영철, 최정례, 도종환, 하종오, 황동규, 허만하 시인 등이 연달아 시집을 내놓으며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가만히>
낯설고 섬뜩한 상상력으로 시의 화법을 바꿔버린 젊은 시인들을 둘러싼 ‘미래파 논쟁’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단을 달궜다. 미래파가 한국 시단의 숨통을 틔워줬다는 옹호파와 미래파에겐 미래가 없다는 반대파의 논쟁이 주요 문예지의 지면을 메우며 논쟁은 가열됐다. 문학 위기론이 무색하게 <시작> <시에> 등 시 전문지 창간도 잇따랐다. 이 같은 시의 풍요는 매분기 우수문학도서를 선정해 창작지원금을 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 지원사업의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시에> 시작>
소설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실험과 모색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특히 유머와 위트로 현실세계의 모순에 딴죽을 거는 재기발랄한 소설들이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박현욱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 김종광 소설집 <낙서문화사> , 김중혁 소설집 <펭귄뉴스> , 이기호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박형서 소설집 <자정의 픽션> , 박민규 장편소설 <핑퐁> 등 올 한해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품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핑퐁> 자정의> 갈팡질팡하다가> 펭귄뉴스> 낙서문화사> 아내가>
가벼운 진지함으로 한국문학의 중심을 점거한 이들의 맞은편에선 고전적 소설 미학을 치열하게 탐색해온 정미경, 이혜경, 하성란, 김인숙 같은 작가들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소설의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했다.
베스트셀러
시장이 선택한 작가 공지영의 독주였다. 지난해 4월 출간된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은 출간 이래 70여만부, 올해만 50만부가 넘게 팔리며 올해 연간 베스트셀러 종합2위(교보문고 집계)에 올랐다. 문학 부문에선 1, 2위를 독점했는데(표), 두 소설의 판매량은 나머지 10위권 이내 8권의 판매부수 총량을 능가했다. 우리들의>
올해 문학시장은 영화나 드라마의 종속변수로서의 현주소를 실감케 했다. 키라 나이틀리 주연의 동명영화가 히트하면서 제인 오스틴의 고전소설 <오만과 편견> 이 느닷없이 베스트셀러 상위 순위를 강타했고, 이준기 주연의 영화 <플라이 대디> 개봉에 힘입어 일본 원작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 도 사랑을 받았다. 플라이> 플라이> 오만과>
그밖에
단일 남북문학인 조직이 10월30일 금강산에서 결성식을 갖고 60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출범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5월 한국과 세계 15개국의 젊은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2006 서울, 젊은 작가들’ 대회를 개최하는 등 해외 작가들과의 교류가 활성화한 한 해였다.
<머나먼 쏭바강> <왕룽일가> 의 소설가 박영한씨가 8월23일 타계했으며, <솔아솔아 푸른 솔아> 의 원작시를 지은 최초의 노동자 시인 박영근씨가 5월11일 별세했다. 솔아솔아> 왕룽일가> 머나먼>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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