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는 답변 사이사이 얕은 기침을 했다. “감기에 걸린 지 한달 가량인데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해 그런다”며 슬쩍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뽀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어렸으나 총 제작비 130억원이 들어간 첫 주연 영화 <중천> 에 대한 중압감은 크게 느끼지 않는 듯 보였다. “출연 결정했을 때 장르의 부담 같은 건 따지지 않았어요. 그저 연기해야 할 캐릭터만 봤어요.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좋았거든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중천> 에 담긴 의미와 제 출연의 의미를 깨닫게 됐어요.” 중천> 중천>
21일 개봉하는 <중천> 은 판타지 무협영화다. 사람이 죽어서 환생할 때까지 49일간 머문다는 상상의 공간 ‘중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태희는 반란을 일으킨 영혼들로부터 중천을 지키는 여인 소화 역을 맡았다. 현생에서 사랑을 나눴던 무사 이곽(정우성)을 중천에서 만나지만 기억이 지워져 알아보지 못하는 역할이다. 중천>
영화는 소화와 이곽의 사랑이야기에 액션이 포개진다. 컴퓨터 그래픽의 놀라운 기술에 힘입은 화면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진경을 선사하지만 드라마의 이음매는 헐겁다. 빠른 전개로 승부하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상영시간은 판타지 무협치곤 다소 단출한 1시간 42분이다. 당연하게도 김태희의 모습은 예상보다 많이 잘려나갔다. 그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소화의 성격을 확실히 드러낼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사람들이 ‘별 거 없네’ 그럴까 봐 걱정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영화 전체를 위해 필요 없는 장면이라면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며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대범한 듯 무신경한 듯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둔녀’라는 별명까지 얻은 성격다웠다. “제 성격이 무심하고 좀 둔해요. 한가지 일에 집중하면 어떤 소리가 나도 모른다 해서 고등학교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에요.”
이런 성격 때문에 그는 배우가 될지 고민도 많이 했다. “연기를 한다면 인정 받고 싶은데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망설임과 “이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는 조바심 사이를 오래 오갔다고 한다. 결국 김태희는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뚜렷이 보이겠지”라는 생각에 연기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렇게 시작한 연기. 김태희는 “데뷔 때와 달리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연기를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 그래서 한때 인터넷을 달궜던 모 재벌 인사와의 야릇한 풍문도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심정으로 받아들인다. “그 소문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이젠 그런 것들로부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요. 좀 더 강해졌다고 할까요.”
그는 ‘공부와 얼굴은 반비례’라는 남자들의 짓궂은 농담을 무참히 짓밟는 배우다. 서울대 출신의 배우. 김태희에게 쏟아지는 흠모와 시기와 부러움의 대부분은 외모와 학력의 결합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에게 집중되는 질투어린 시선과 주변의 입방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는 “요즘엔 예쁘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 많은데”라며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출신 대학이 연기 생활에 득이 된 듯하다”며 학교 후광효과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미지가 고정돼 제가 연기를 해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연기의 매력을 알 수 있게 해준 영화를 계속 하고 싶어요. 그래도 드라마로 팬들에게 사랑 받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제가 공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면 뭐든지 할 생각이에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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