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멜로, 이젠 별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멜로, 이젠 별로!

입력
2006.12.20 23:50
0 0

일단 만들면 ‘기본은 한다’는 멜로. ‘고무신 관객’을 사로잡았던 1950년대부터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관통해 온 이 전통 장르는 올해 여느 때 못지않은 눈물로 관객과 시청자의 눈길을 호소했다. 그러나 극장 관객과 시청자는 ‘멜로가 별로’라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멜로에 발목 잡힌 충무로

충무로 멜로의 흥행성적은 처참하다. 이병헌 전지현 정우성 차승원 등 스타 배우들이 대거 동원되고, 블록버스터급 멜로가 선을 보였지만 관객은 외면했다. 작품 대부분의 흥행성적은 50만 관객 내외. 그나마 <데이지> 가 102만명의 성적을 올렸지만 100억원으로 추산되는 제작비를 고려하면 고개를 못들 수준이다. <국경의 남쪽> 은 재앙에 가까웠다. 70억원을 들였지만 26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로맨틱 코미디인 <청춘만화> (177만명)와 <달콤, 살벌한 연인> (228만명)이 선전을 펼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제철이라는 가을에도 멜로는 맥을 못췄다. <가을로> (70만명), <사랑따윈 필요 없어> (51만9,000명),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53만명)이 추풍낙엽처럼 극장서 물러났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그 해 여름> 은 아직 상영 중이지만 17일까지 고작 22만명과 30만명이 극장을 찾아 파장 분위기가 역력하다.

올해 멜로가 사랑 받지 못한 이유는 설익은 기획에서 찾을 수 있다. 관객들의 요구는 다양해졌는데 신파를 답습하는 경향이 여전했다. 탈북자를 다룬 <국경의 남쪽> 과 누아르 분위기를 접목한 <데이지> 는 참신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낯선 소재와 스타일 때문에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했다. <연리지> (13만명), <백만장자의 첫사랑> (63만명), <도마뱀> (39만명), <사랑하니까, 괜찮아> (25만명)는 희귀성 불치병을 동원해 눈물을 짜내려 했지만 관객들의 냉소만 돌아왔다.

<접속> 을 제작한 심보경 보경사 대표는 “멜로는 시작할 때는 쉬워 보여도 제일 어려운 장르”라며 “다른 장르와의 결합 등 좀 더 입체적으로 치밀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태를 적극 반영하면서 이 시대 연애 담론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화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영화사 상장 붐을 타고 제작이 급증하면서 ‘묻지마 캐스팅’이 늘어난 것도 멜로의 몰락을 부추겼다. 멜로는 관객의 연애 판타지를 자극하는 배우의 매력이 유난히 흥행을 쥐락펴락하는 장르. 하지만 설경구 이병헌 한석규 차승원 등이 전염성 높은 ‘연애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었느냐에 대해 충무로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관객은 멜로에서 약간의 새로움만을 원한다”며 “그런데도 제작사는 너무 안일하게 스타 캐스팅에만 힘을 쓰며 이야기의 재미를 던져주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방송도 정통 멜로 몰락 시대

‘정통 멜로’의 시대는 저무는가. 남녀의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멜로 드라마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현재 방영중인 KBS <눈의 여왕> , MBC <90일, 사랑할 시간>, SBS <연인> 은 모두 현빈 김하늘 김정은 등 스타급 연기자에 남녀의 가슴 아픈 사랑을 앞세웠다. 그러나 <눈의 여왕> 과 <90일, 사랑할 시간>은 한자리수 시청률을 기록 중이고, <연인> 은 후반부에 접어들며 20% 가깝게 상승했지만 전작인 <파리의 연인> , <프라하의 연인> 에는 못 미친다. 앞서 방송된 SBS <스마일 어게인> , MBC <어느 멋진 날> 등도 모두 실패했다.

정통 멜로의 부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불치병, 출생의 비밀, 재벌2세와 조폭, 얽히고설킨 사각관계 등 십 수년간 쓰인 진부한 설정이 그대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뒷심을 발휘중인 <연인> 은 시청자 게시판에는 “내용만 듣고 <파리의 연인> 과 비슷한 작품인 줄 알았다가 뒤늦게 봤다”는 반응이 많다. 비슷한 설정에 표현 수위만 높였다가 시청자의 거부감만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어느 멋진 날> 과 <90일, 사랑할 시간>은 각각 남매와 사촌간의 사랑을 그렸다가 시청자의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정통 멜로의 부진은 근본적으로 멜로 드라마가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짧고 밀도 있는 에피소드와 다양한 장르가 뒤섞이는 해외 드라마에 익숙해진 20~30대 시청자들에게 남녀간의 사랑만으로 16회 이상을 채우는 정통 멜로는 지루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MBC <궁> SBS <돌아와요 순애씨> 는 남녀의 사랑을 바탕에 깔면서도 한국이 입헌군주국이라거나, 두 여자의 영혼이 뒤바뀌는 등 독특한 설정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내세우는 멜로 드라마의 정서가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공감을 사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TV 평론가 정석희씨는 “과거와 달리 요즘 젊은이들에게 연애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비극적인 사랑은 그들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인기를 얻은 작품들은 사극을 제외하면 대부분 MBC <환상의 커플> 처럼 남녀의 티격태격하는 일상을 바탕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가 강했다. 신분이나 죽음을 초월하는 가슴 절절한 사랑은 기생과 양반의 사랑을 다룬 KBS <황진이> 같은 사극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죽고, 꼬이고, 눈물 흘리는 것으로 승부하며 오랫동안 드라마의 주류로 자리잡았던 멜로 드라마가 점차 ‘철 지난 유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