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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아름다운 사람들] ②울산 태화강서 투신 20대녀 구조 주인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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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아름다운 사람들] ②울산 태화강서 투신 20대녀 구조 주인철씨

입력
2006.12.2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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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9일 오후9시 울산 태화강변. 열흘 전부터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던 울산건설플랜트 노조원 주민철(39ㆍ사망)씨가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들이 마신다. 집중호우로 불어난 시커먼 강물을 바라보던 그는 “올해는 아들 생일(9월7일)에 꼭 가봐야 할 텐데 (이 싸움이)언제쯤 끝이 날지…”라며 한숨지었다. 전국의 건설현장 등을 돌아다니는 탓에 아내와 이혼한 뒤 5년 전부터 부산의 형님 댁에 아들 지현(10ㆍ초등3)군과 딸 지영(8ㆍ초등1)양을 맡긴 못난 아버지였다.

“어, 어~저기 다리 위에 사람 아냐?” 태화교 난간 위에서 신모(28ㆍ여)가 위태롭게 몸을 휘청거렸다. “풍덩~” 투신 자살이었다. 주씨는 동료 조합원 차모(39)씨와 함께 집어 삼킬 듯 소용돌이치는 강물로 뛰어들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야속한 강물은 신씨와 차씨 2명만을 뭍으로 돌려 보냈다. 신씨를 강 중간지점까지 이끄느라 온 몸에 힘이 빠진 주씨는 그렇게 강바닥으로 스러졌다. 하늘도 눈물을 토해내듯 이내 거센 빗줄기를 뿌려댔다. 주씨를 찾기 위한 수색작업이 힘들 정도였다.

극한 대치를 벌였던 노조와 경찰도 쇠파이프와 진압봉 대신, 탐침(探針) 막대와 구명조끼를 입고 함께 구조에 나섰다. 격렬한 충돌로 10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던 앙금도 어느덧 사라졌다. 노조원과 경찰, 119구조대 등 1,000여명은 이틀에 걸쳐 태화교~명촌교 아래까지 4㎞ 강변과 강바닥을 샅샅이 훑었다. 주씨는 결국 21일 낮12시께 태화교 하류 200m 바닥에서 주검으로 떠올랐다.

경남 양산의 솥발산 공원묘지에 안치된 주씨는 최근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사자로 지정됐다. 동료 전병철(39)씨는 “18년을 알고 지냈지만 늘 한결 같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회상했다.

5개월이 흐른 20일 오후. 남매와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부산 서구 서대신동의 형님 댁을 찾았다.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며 한동안 인터뷰를 꺼렸던 주씨의 큰 형 만옥(44)씨는 “전남 고흥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80)가 충격 탓에 거동도 하지 못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일용직 근로자인 그는 “의사자로 지정돼도 부모 없이 자라야 할 아이들을 위한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대책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아들(10), 딸(4)에다 조카 남매를 맡으면서 식당 일까지 그만 둔 형수 곽미화(38)씨는 “한창 어리광 피울 나이인데, 두 아이 모두 전혀 부모가 보고 싶다거나 찾지 않는 게 더욱 가슴을 저미게 한다”며 “뻔한 형편이지만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조심스레 아빠에 관해 물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남매는 “보고 싶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숨겨둔 속내를 들킨 탓일까. 남매는 마주 앉아 실을 가지고 노는 실 뜨기 놀이로 관심을 돌렸다. 지현이는 라면을 잘 끓여 요리사가 꿈이라고 했고, 지영이는 남을 도울 수 있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남매에겐 2년 전 아빠와 찍은 사진만 남아 있다고 했다. 아빠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 속에서만큼은 세 사람 모두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부산=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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