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죠!”
아시안게임 금메달로는 성이 차지 않았을까. 김호철(51) 배구대표팀 감독은 ‘한국배구의 미래’를 생각했다. “우선 아시안게임 우승의 여세를 몰아 침체에 빠진 프로배구를 부흥시키겠다”면서 “승패를 떠나 멋진 플레이로 배구의 진수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 "AG여세 몰아 배구 살려야한정된 선수자원, 대표팀 전임제로 체계적 관리 절실
현대캐피탈의 미디어데이가 열린 20일 용인숙소. 국가대표 사령탑에서 현대캐피탈 감독으로 돌아왔건만 아직도 대표팀 걱정이다. “월드리그(5월)에서 세계 정상급과의 격차를 확인했고, 세계선수권(11월)에서는 비참한 꼴을 당했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를 악물고 우승했지만 중국 일본은 물론 중동(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카타르)조차도 어려운 상대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발전했는데 한국만 제자리였단다.
“실력이 아닌 정신력의 승리였다.”
한국에 돌아온 지 사흘이나 지났지만 김호철 감독은 “아직도 아시안게임 우승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만약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단다. 결승에서 만난 중국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4.5대5.5로 뒤진다고 생각할 만큼 버거운 상대였다. 야구 농구 축구 등 프로스포츠의 몰락 때문에 부담이 컸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김감독은 “한국 배구와 프로의 자존심을 어깨에 걸고 뛰었습니다. 꼭 이기겠다는 정신력은 우리가 앞섰죠. 선수들에게 ‘영웅은 난세에 나오는 법이다. 무너진 프로의 자존심을 살리자’고 강조했는데, 결국 우리가 영웅이 됐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는 건 죽기보다 싫다는 악바리. 그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였다. “이기면 실력이 있는 거고 지면 실력이 없는 거죠. 승부의 세계가 원래 그래요.” 결승에서 강호 중국을 3-1로 꺾은 원동력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태극마크에 대한 사명감을 꼽았다.
“태극기를 하늘 높이 던지고 싶었다.”
우승했을 당시 헹가래 때 태극기를 든 이유가 궁금했다. “태극기를 든 채 헹가래를 받으니 더 좋던데요. 사실은 태극기를 건네주려 했는데 선수들이 갑자기 헹가래를 쳐서…. 신문에 나온 사진 정말 멋지던데, 사진 좀 구해주세요, 하하!”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김감독은 또 “무릎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한 맏형 신진식(33ㆍ삼성화재)부터 막내 문성민(21ㆍ경기대)까지 모두 태극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결과가 한국의 마지막 금메달(58번째)이 됐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아시아 정상을 지켰다는 안도보다는 수성을 걱정했다. “한국 배구가 아시아 정상을 지키고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려면 장기계획이 필요합니다. 국가대표 감독 전임제를 도입해 대표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좋을 텐데…. 한국 선수들의 기본기가 경쟁국에 비해 떨어진 데다 대표팀이 훈련할 시간도 너무 짧아요. 장기적으로 청소년 대표팀과 국가대표팀 관리를 일원화하면 한정된 선수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곁에 없어 더욱 그리운 내 가족”
경상도 사나이의 무뚝뚝함이 철철 넘치는 김호철 감독. 하지만 아내 임경숙씨의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고 생각날 때마다 본다. 길가에 수북이 쌓인 눈을 보면 아내와 딸 미나(22), 아들 준(18)이 생각난다. “성탄절과 연말연시에 함께 한 적이 없네요. 기쁨을 함께 나누면 두 배라던데…. 허전하네요.” 코끝이 찡해지는가 싶더니 “서로 할 일이 많다는 증거죠. 바쁜 게 좋은 거죠?”라며 웃었다.
2006년을 시작하면서 가슴속에 세 가지 꿈을 품었다. 첫째가 삼성화재의 10연패 저지, 둘째가 아시안게임 우승, 셋째가 침체한 프로배구의 부활이다. 김호철 감독은 이제 마지막 목표 달성에 나선다.
“한국배구는 오랜 침체기를 거쳤습니다. 인기몰이를 위해 프로배구를 출범시켰지만 팀이 4개밖에 안 됩니다. 한국배구연맹이 팀 창단을 약속했으니 저를 비롯한 선수들은 배구팬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드리는데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김 감독은 마지막으로 프로배구를 사랑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팬 여러분, 23일부터 개막하는 프로배구를 많이 찾아주시고 응원해주세요”
용인=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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