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죽을 쑤는 바람에 그 뒤에 바짝 붙어 바람을 피하며 한나라당은 신세가 폈다. 정당 지지율이 40%대로, 10%대의 열린우리당이나 대통령의 처지와는 비교가 안 된다.
당 소속 대선 주자 3명의 '활약'까지 얹으면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행사할 수 있는 정치권 내 권력 지분은 '집권 야당'이라 할 만하다. "야당 때문에 국정 운영을 못하겠다"는 대통령의 푸념과는 다른 얘기다. 누릴 것은 누리되, 할 일은 적당히 해도 되는 '웰빙 정당'의 모습에 독주 상태의 높은 지지율은 어울리지 않는다.
선거 상황에서 당이 후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이 그래도 되는 시점과 상황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예비 후보들의 활동과 당의 역할은 아직은 다른 영역으로 구분돼야 한다.
예를 들어 임시국회를 열어 놓고도 예산안 처리가 실종 상태인 데 대해 '집권 야당'으로서 마냥 면책을 즐길 수는 없다. 여당과의 협상이 상대적이라거나, 쟁점 현안들이 앞뒤로 연계돼 있는 원내 전략만을 되뇌는 게 전부여서는 곤란하다.
지난 대선을 이끌었던 서청원 전 대표가 어제 한 토론회에서 "지난 두 번의 대선 패배는 한나라당의 이름으로 집권할 준비가 돼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지금 한나라당이 들어야 할 정확한 말이다.
대선 주자들의 인기는 높을지 모르지만 그 그늘 아래 당과 당 대표의 존재감은 희미하기만 하다. 그 사이 의원들은 줄서기하느라 이리 저리 바쁘다고 하니, 국고 보조금에 세비에, 세금 받는 사람들이 할 일은 이런 것이 아니다.
"후보만 있고, 당이 없다"는 말은 정체성과 당위성, 철학의 문제에 서 공허한 정당이라는 뜻이다. 선거 패배 제 1의 당사자였던 이회창 전 후보가 요즘 정치적 언행을 확대하고, 정치 재개의 조짐을 보이며 꿈틀거리는 것도 한나라당에 빈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릇은 한껏 커졌는데, 채울 능력과 의지가 없으면 그런 정당의 지지율은 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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