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보면 무언가 파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많은 듯한 가게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걸 보노라면, 소비수요는 한정돼 있을 텐데 어떻게들 먹고 살려나 울적해진다.
그러나 애초부터 인류는 물물교환을 하며 살지 않았던가? 세상 모든 사람이 장사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아무것도 팔 걸 내놓지 않고 잘만 사는 사람들이 더 수상한 것이다.
회현동 지하도 계단 출입구 한 구석에 나프탈렌과 참숯이 펼쳐져 있다. 상인은 보이지 않고 새하얀 나프탈렌과 새까만 참숯이 누군가 말을 건네길 기다리는 양 말끄러미 행인들을 바라본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상품으로 말을 거는 사람들이다. 괜한 트집을 잡거나 자기를 붙들고 길게 무의미한 말을 조잘댈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은 하시라도 누구하고나 대화를 나눌 태세가 돼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과 한 대상을 두고 비슷한 정도의 관심으로 진지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직업이 상인 말고 뭐가 있을까?
장사하는 한 친구가 생각난다. 열심히 일한 그는 간신히 가게 세나 문다. 건물 주인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의 노동의 결실을 거의 다 가져간다. 내 친구는 상노(商奴)인가?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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