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후부터 뚜렷해진 현상이지만,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영어는 국제공용어로서의 위상이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영어가 유일한 언어처럼 되어가고 있다. 영어가 제국처럼 우리의 일상생활과 삶의 모든 분야에서 지배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영어가 출세의 중요한 매개물이 되고 심지어는 영어 실력이 문화자본이 되는 상황이다 보니 해외유학, 어학연수 그리고 영어 사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예산이 30조원을 조금 넘고 그 가운데 고등교육예산이 3조원에 못 미치고 있는데. 국내의 영어 관련 사교육비는 연간 14조원 이상이고 토익 토플 등 영어평가에만도 7,000억원 이상이 소비된다고 한다. 근본적 조치가 필요한 국면이다.
정부는 15일 '서비스수지 적자 유발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이르면 2010년까지 제주도에 여의도의 1.3배 규모의 '영어전용타운'을 세우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안에 따르면 정부는 제주도에 외국 영어연수 수요를 흡수할 영어교육센터와 자립형 사립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 그리고 민간 학원 등을 세운다고 한다.
또 수업과 생활이 모두 영어로 진행되는 이 학교들은 기존 학교와 다른 교과과정을 운영하지만 공식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며, 초등학생들은 1년이나 2년 정도 영어 몰입교육(수학이나 과학 또는 역사 과목 등을 영어로 배우는 것)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방안은 당정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것이라고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장기간 수업으로 어느 정도 학습효과는 있겠지만 동기유발이 되어있지 않고,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영어교육이 실시되는 한 그것은 제주도 안에 또 하나의 영어섬이 될 '값비싼 놀이터'를 만드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사교육비 경감과 해외유학 차단 효과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난 전국의 영어마을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최고 시설을 갖추었다는 경기도 파주, 안산 영어마을은 올해 260억원의 적자를 보았으며, 국정감사에서 D+ 평가를 받았다.
이 학교의 학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도 문제다. 국어와 국사 등의 교과 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의 학력을 인정하는 것은 외국인학교 졸업생에게 우리 학력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세번째로 몰입교육은 그 교육방식을 최초로 개발한 캐나다와 우리나라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캐나다는 영어와 불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학생에게 불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몰입교육을 개발했다.
이밖에도 교육부의 소관사항인 영어교육을 놓고 재정경제부가 유학수지 적자를 만회한다는 논리로 이 계획안을 만들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영어교육은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지 값비싼 놀이터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효과없이 과열만 된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폐지하거나 선택과목으로 바꾸고, 중학교에서는 의사소통능력 향상을 위해 영어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사 양성과 연수에 투자를 해야 하며, 영어시간 만이라도 학급 학생수를 줄여서 진행할 수 있는 교육환경 조성이 급선무가 되어야 한다.
박거용ㆍ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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