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의 성탄절에는 작은 비애도 스며 있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은 페이소스와 사랑으로 아름다운 소설이다. 젊고 가난한 여인 델라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고민에 빠진다. 고민 끝에 탐스러운 황금빛 머리칼을 팔아 남편에게 선물할 시계줄을 산다. 남편의 큰 자랑거리는 금시계이지만 줄이 없는 게 늘 가슴 아팠다. 크리스마스>
남편이 귀가하고 어이 없는 소동이 벌어진다. 남편은 아내의 긴 머리를 더 예쁘게 해주려고 보석 박힌 머리 빗을 사왔으나 서로 어긋나고 말았다. 아내는 머리칼을 팔아 시계줄을 사고, 남편은 시계를 팔아 머리 빗을 사온 것이다.
▦ 12월이 되어 서울시청 광장에 높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세운 이 트리가 올해는 소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외국의 트리 꼭대기에는 별 장식이 달려 있는데, 이 트리에는 붉은 십자가 장식이 있기 때문이다.
고대역 삼거리, 경기 군포시 분수광장 등에도 십자가가 달린 성탄 트리가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특정 종교를 홍보하는 장식물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석탄일에 연등을 다는 것처럼 문제될 게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 한기총 측은 "트리 위에 꼭 별을 달아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별보다 십자가가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라 2002년부터 십자가 장식을 달아왔다는 설명이다.
성탄절은 이제 전세계 종교 축제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함께 기뻐하는 축제가 되어 있다. 그렇더라도 이런 주장은 성탄 트리에 대한 공부ㆍ고증이 부족했거나 전도를 위한 조바심을 드러낸, 무지의 소산으로 보인다.
▦ 앞에 인용한 오 헨리 소설의 원제는 'Gift of the Magi'(동방박사의 선물)다. 갓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별을 따라 왔다는 세 Magi를 등장시킨 제목이다.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이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선물은 충성을 상징하는 황금과 신성한 유향, 박해를 예언하는 몰약 등이다.
페르시아 천문학자 정도로 추측되는 동방박사들은 움직이는 별을 따라 예수에게 이른다. 성탄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습관이나, 트리 꼭대기에 별을 다는 것은 이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