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에 자료제공을 거부하는 기업은 자료를 제출할 때까지 1일 단위로 추가되는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또 공정위는 기업이 상호출자금지 등을 어겼는지 파악하기 위해 금융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며, 현장 조사에 나가서는 자료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봉인 조치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기업에게는 법적 제재나 소송까지 가지 않고 공정위나 피해자들과 합의해 사건을 끝마칠 수 있는 제도도 도입된다.
공정위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18일 입법예고하고 내년 2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출자총액제한제도 축소방안이 11월15일 관련부처가 합의한 정부안 그대로 반영됐지만, 순환출자 규제가 빠진 데 대해 여당 일각에서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어 국회 입법 과정에서 수정될 가능성도 제기 되고 있다.
우선 공정위의 조사 수단이 다양화된다. 현재 부당내부거래 혐의를 밝히는 데에만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인에 대한 금융거래정보요구권이 상설화되고 상호출자금지 위반을 조사하는데도 쓰이게 된다. 또 공정위 직원이 기업체에 현장조사를 나가서 필요한 자료 등을 봉인할 수 있는 봉인조치권도 도입된다. 감사원이 가지고 있는 이 권한은 조사관이 기업에 출퇴근하며 조사를 할 때 밤중에 기업들이 조사자료를 숨기거나 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사무실이나 건물, 운송수단까지 봉인이 가능하다. 봉인을 뜯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 조사거부나 방해 행위가 있을 때는 자료를 내놓을 때까지 1일 단위로 금액(전년도 1일 평균매출액의 0.1%)이 증가하는 이행강제금 제도도 도입된다. 한철수 공정위 경쟁정책본부장은 “지금까지는 조사방해가 있어도 일정금액 이하의 과태료밖에 부과할 수 없었는데, 이행강제금은 택시요금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액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사법처리를 받지 않고 각종 합의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방안들도 도입된다. 공정위와 기업이 시정조치와 피해구제 등에 합의하면 제재하지 않고 사건을 종료하는 동의명령제와, 소송까지 가지 않고 해당 기업과 피해 당사자와 피해구제에 합의하는 조정제도도 시행된다. 공정위는 동의명령제가 재계 봐주기라는 논란에 대해 “죄질이 나빠서 과징금을 부과해야 할 사안이라면 동의명령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기업들의 인수합병(M&A) 심사는 더욱 강화된다. 기존에는 A,B사의 인수합병을 심사할 때 두 회사의 결합으로 관련 시장에 독과점이 형성되는지만 확인했으나 앞으로는 A,B사 계열사간의 관계도 심사에 포함되게 된다. 즉 A,B사가 결합함으로써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던 A사의 자회사와 B사의 자회사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그룹권에 포함돼 독과점이 형성될 경우 이들 자회사에 대해서도 지분매각 등의 시정조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독과점 기업의 횡포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현행법은 독과점기업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로서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하거나, 경쟁사업자의 진입을 방해하는 행위 등 5가지 금지유형을 정해놓고 있는데, 이 유형이 지나치게 제한돼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공정위의 재량을 넓힐 수 있도록 유형을 따로 두지 않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기로 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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