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요정' 김연아(16ㆍ군포수리고)가 '은반 여왕'에 등극했다.
김연아는 16일 밤(한국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이스 팰리스에서 벌어진 2006~0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마지막 날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19.14점을 얻어 쇼트프로그램에서 따낸 65.06점을 합친 총점 184.20점으로 동갑내기 라이벌이자 지난해 우승자 아사다 마오(172.52점)을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인으로 피겨 스케이팅 세계정상에 오른 것은 처음으로 1905년 현동순이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이후 한국 피겨 스케이팅 101년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쾌거다. 지난 3월 세계주니어선수권을 제패했던 김연아는 이로써 성인 무대 데뷔 첫 해에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김연아의 금메달은 허리 부상을 딛고 따낸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허리 통증이 심해 테이프를 칭칭 감은 김연아는 발에 맞는 스케이트도 없어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다른 스케이트를 신고 연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쇼트프로그램에서 3위에 올랐던 김연아는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불굴의 의지로 최고점(119.14점)을 얻어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김연아는 경기 직후 "허리가 아파서 우승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연아는 18일 갈라쇼에 참석한 뒤 19일 귀국할 예정이다.
김연아는 내년 1월 중국 장춘에서 벌어지는 제6회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뒤, 3월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지난 1905년 서울 삼청동의 개천. YMCA에서 활동하던 현동순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을 지쳤다. 그로부터 딱 101년이 흐른 2006년 12월 16일(한국시간). ‘피겨 요정’ 김연아(16ㆍ군포수리고)가 한국인 최초로 피겨스케이팅 세계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다.
피겨스케이팅 최강국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이스 팰리스. 2006~2007 국제빙상경기연맹 그랑프리 최종전에 나선 김연아는 허리가 아파서 진통제를 먹어야 했다. 몰려드는 통증에 허리를 테이프로 칭칭 감은 김연아는 하늘색 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었지만 표정이 어두웠다. 박분선 코치와 어머니 박미희씨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비상하는 종달새> 의 애잔한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자 김연아가 얼음 위로 살포시 미끄러졌다. 김연아는 마치 종달새가 아침 햇살을 헤치고 비상하듯 얼음 위에서 고혹적인 ‘날갯짓’을 펼쳤다. 트리플 플립에 이은 트리플 토루프 컴비네이션(연속 공중 3회전)으로 박수갈채를 받은 김연아. 그는 마지막 더블 악셀(공중 2.5회전)에서 약간 불안했지만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다. 비상하는>
쇼트프로그램에서 3위에 그친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에서는 119.14점을 받았다. 총점은 184.20점. 김연아가 대기실에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을 무렵 쇼트프로그램에서 2위를 차지한 안도 미키(18ㆍ일본)가 나섰다. 컨디션 난조에 빠진 안도는 93.29점을 얻는데 그쳐 총점(157.32점)이 김연아보다 뒤처졌다.
마지막으로 출전한 선수는 김연아의 숙적 아사다 마오(16ㆍ일본). 지난해 챔피언 아사다는 김연아를 의식한 듯 시작부터 고난이도 기술 트리플 악셀(공중 3.5회전)을 시도했지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긴장한 탓인지 한 번 더 넘어진 아사다(총점 172.52점)는 103.18점에 머물러 금메달을 김연아에게 내줬다.
박분선 코치는 “연아가 허리 부상에 시달렸음에도 우승을 차지해 깜짝 놀랐다”며 활짝 웃었다. 박 코치는 “연아가 훈련할 시간이 부족해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 사용한 프로그램을 이번에도 그대로 연기했다”면서 “연아가 실수 없이 연기를 마친 것과 달리 일본 선수들의 실수가 잦았던 건 행운이었다”고 덧붙였다.
‘피겨요정’에서 ‘은반 여왕’에 등극한 김연아(3,379점)는 이날 우승으로 세계랭킹이 9위에서 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세계 1위는 이번 그랑프리 시리즈에 불참한 러시아의 이리나 슬러츠카야(3,930점), 2위는 아사다(3,555점)다. 김연아는 아직 슬러츠카야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청신호를 밝혔다.
■ 그랑프리 파이널이란?
그랑프리 파이널은 올해 6차례 열린 그랑프리 시리즈 여자 싱글에 참가한 총 38명의 선수 중 가장 성적이 뛰어난 상위 6명에게만 출전권이 주어지는 '왕중왕' 성격의 대회다.
각 선수들은 6차례 그랑프리 시리즈 중에서 최대 2개 대회까지 초청을 받을 수 있는데 올해에는 38명의 전체 참가선수 중 세계랭킹이 높은 23명만 2개 대회에 나섰고, 나머지 선수들은 1개 대회에 출전했다.
김연아는 지난 2차 그랑프리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뒤 지난달 열린 4차 그랑프리대회에서 우승, 그랑프리 포인트 26점으로 전체 4위를 차지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참가 자격을 얻었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으로 세계 빙상계를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한 김연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연아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와서 멍한 기분이다.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김연아와의 일문일답.
-어렵게 우승 했는데.
“무엇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예상 조차 못했던 결과가 나와서 멍한 기분이다. 우승했기 때문에 우선 기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연기 중에 실수를 했던 게 아쉽다. 그래도 감점이 적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라이벌' 아사다 마오와 시니어 무대 첫 맞대결이었다.
“아사다가 나왔기 때문에 특별히 긴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컨디션이 나빠 더 긴장을 한 것 같다. 아마 아사다도 부담을 갖고 경기를 했을 것 같다.”
-아사다와 안도 미키의 연기를 봤나.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끝낸 뒤 곧바로 방송 인터뷰가 잡혀서 아사다와 안도의 경기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끝내고 두 명의 점수를 보니까 너무 낮게 나와서 '크게 실수했구나'라고 생각했다. 너무 점수가 적게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허리 부상은 어떤가.
“어떻게 부상을 당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누적된 피로 때문인 것 같다. 전날 아침까지 연습을 하는 데 통증이 심했다. 그나마 계속 치료를 받고 테이핑을 해서 경기 중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동계아시안게임이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 한 달 가량 여유가 있다.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빨리 숙소에 들어가서 자고 싶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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